매일신문

[야고부] 자기기만

남을 속이려면 자신부터 속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소련의 국가 폭력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서구 좌파 지식인들이 합창한 '소련 찬가'는 이를 실증한다. 그들은 날카로운 비판 정신의 소유자였지만 '소련=이상향'이라는 선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는 자기기만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들은 새로운 종교(공산주의)에 스스로 속고 싶어 했던 것이다.

영국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던 시드니 웹'비어트리스 웹 부부는 그런 사이비 지식인의 일원이다. 그들은 소련이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공황이 터지자 생각을 바꿔 소련만이 희망이라는 기만적 자기최면을 걸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그들 저서 제목의 변경이다. 웹 부부는 소련이 제공한 공짜 소련 여행을 마친 뒤 1935년 '소비에트 공산주의:새로운 문명?'을 출간했다. 2년 뒤 이들은 재판을 내면서 제목에서 의문부호를 삭제했다. 소련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새 세상으로 만들려는 '20세기 최악의 문법 수정'('쿄뮤니스트' 로버스 서비스)이다.

소련 찬가의 열렬한 동참자였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언행은 더 어이가 없었다. 당시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紙)의 모스크바 특파원 부인이 쇼에게 소련의 절박한 식량 사정을 전하면서 식구들이 자신의 배급 카드로 먹고살아야 한다면 굶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쇼는 복장 터지는 해법을 제시했다.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세요." 그녀가 아이가 벌써 열네 살이라고 하자 쇼는 이렇게 대꾸했다. "에스키모는 열네 살 때까지 모유를 먹인답니다." 소련이 이상향이라는 거짓 믿음을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자기기만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허무 개그'다.

5종의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는 좌편향교과서대책위 등의 분석 결과는 21세기 한국의 좌파 지식분자들도 똑같은 미몽(迷夢)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입증하는 사례의 하나가 6'25 발발 원인은 남북 모두에 있다는 '6'25 남북 공동 책임론'이다. 이런 헛소리는 한때 진실로 떠받들어졌으나 소련 붕괴 후 극비 문서가 공개되면서 폐기됐다. 극비 문서가 말해주는 것은 '6'25는 스탈린의 사주에 의한 김일성의 남침'이었다. 6'25 남북 공동 책임론은 이를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진실을 보지 않으려는 구제 불능의 자기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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