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 通] 대구 '근대골목투어' 최초 기획자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골목, 그 궤적 좇다보니 그게 제 길 되었네요"

권상구 이사는 대구 골목의 소리와 역사에 귀 기울인 사람이다. 그는
권상구 이사는 대구 골목의 소리와 역사에 귀 기울인 사람이다. 그는 "근대골목투어는 개발한 것이 아니라 '재발견'한 것"이라며 "나는 읽을거리 많은 대구에서 도시를 읽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달 3일, 권 이사가 근대골목투어 코스인 영남대로 앞에 서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상구 이사는 삶의 재미를 골목에서 찾았다. 골목에 스며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사람들에게 읽어줬고, 이 이야기를 찾아 전국과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권 이사가 이상화 고택 앞 벽화에 그려진 이상화의 옷차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권상구 이사는 삶의 재미를 골목에서 찾았다. 골목에 스며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사람들에게 읽어줬고, 이 이야기를 찾아 전국과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권 이사가 이상화 고택 앞 벽화에 그려진 이상화의 옷차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골목은 생물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삶의 모습이 변하듯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골목은 살아 움직인다. 대구 골목의 소리와 역사에 귀 기울인 사람이 있다. (사)시간과공간연구소(이하 시간과공간) 권상구(40) 이사는 골목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숨은 이야기를 찾아냈고, '근대골목투어'를 최초로 기획했다. "근대골목투어는 제가 개발한 것이 아니라 '재발견'한 거에요. 대구는 읽을거리가 많은 도시고, 저는 도시를 읽어주는 남자죠." 이달 3일, 권 이사와 대구 중구 근대골목을 찾아 도시의 역사와 그의 삶을 함께 '읽었다'.

◆도시를 읽어주는 남자

권상구 이사와 기자는 '이웃사촌'이었다. 대구약령시 한의약박물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시간과공간 사무실까지 신문사에서 걸어서 2분도 채 안 걸렸다. 약령시장을 마주하고 같은 골목을 끼고 사는 사이였지만, 이웃에 이토록 무심했나 보다.

골목에 대해 논하는데 갇힌 공간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 함께 근대골목투어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화 고택 앞 벽화 골목으로 갔다. 수십 수백 번 지나쳤던 골목인데 이날따라 벽화 속 이상화의 패션이 눈에 들어왔다. 약 100년 전 모습이었을 텐데, 검은색 도포 안에 넣은 목도리와 중절모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벽화 속 이상화가 입은 옷은 당시 모더니즘의 상징입니다. 이 시대는 모더니즘을 수용했던 시기였고, 이상화는 1930년대 초 상하이에 있는 형 이상정 장군을 만나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이 옷을 입고 있었어요." 권 이사는 이상화의 옷차림에서 시대적 배경과 역사를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이상화 고택, 계산성당으로 이어지는 근대골목투어는 이제 대구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중고등학생들은 물론 타 지역민, 외국인들로 사계절 골목이 북적대는 것도 길에 스며 있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다. 대구 골목 이야기는 한 청년의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다. 20대 후반 YMCA 활동을 했던 그의 주무대는 동성로와 약전골목이었다.

"골목을 다니다가 한 선배가 '여기가 삼대째 이어진 한약방'이라고 말했는데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역사가 책이 아니라 도시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역사책에는 대구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라고 적혀 있지만 정작 현장에는 역사를 수용하는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그래서 주변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민간이 낸 아이디어에 예산 댄 지자체

그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2002년 '거리문화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한'일 월드컵과 맞물려 '깨끗한 거리를 만들자'며 시민을 계도하는 단체로 생각했다면 오해다. 그들은 골목의 궤적을 좇는 일을 했다. '골목의 궤적'이라는 모호함을 구체화하는 방법은 길을 찾아 사람을 만나고, 이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100명의 조사원들이 골목을 다니며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 첫 번째 성과는 대구 근대사 가이드북인 '대구新(신)택리지'다. 이 책은 대구 전통 공간과 근대 건축물, 역사 거리 등을 총망라한 생활사 지도로 불린다.

"조사원들이 길을 직접 찾아다녔고, 호기심이 생기면 바로 물었어요. 예를 들어 약전골목의 이 가게는 언제 생겼고, 할아버지는 여기서 언제부터 일하셨냐는 식으로 조사했죠. 조사하면서 약전골목에 삼대째 이어져 온 지물상, 승복사도 찾았어요. 약이 팔리는 만큼 종이가 팔리고, 과거 약령시 최대 소비자가 스님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신택리지 발행은 파편화된 지역사를 체계적으로 엮어 도시의 맥락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2007년부터 행정기관도 근대골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권 이사는 아이디어를 냈고, 아이디어의 사업성을 알아본 지자체는 예산을 댔다. 2007년 근대골목 디자인 개선 사업을 시작으로 2009년 종로'진골목 개선 사업 등 지난 7년간 행정적 지원을 등에 업고 이야기를 입힌 골목이 되살아났다. 이상화고택보존운동본부 대표였던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의 관심과 권 이사의 아이디어가 통했던 것이다.

상복도 잇따랐다. 근대골목투어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문화부가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을 수여했다. 근대골목이 이만큼 인기몰이를 할 줄 알았느냐고 묻자 권 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2007년 근대골목 디자인 개선 사업을 할 때 문화부 예산 3천만원으로 컨설팅을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이렇게 될지 몰랐어요. 중구가 받은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은 아주 의미 있는 상입니다. 지난 7년간 대구는 근대골목을 토대로 건강한 지역 문화를 만들었고, 이를 문화부에서 인정한 거죠."

◆외환 위기에 선택한 '길'

3월이지만 날이 추웠다. 골목을 걷다 보니 권 이사도, 기자도 온몸이 꽁꽁 얼어 '길에서 인터뷰를 하겠다'는 미션은 포기하고 시간과공간 사무실로 장소를 옮겼다. 장소 변화에 맞춰 인터뷰 주제도 개인의 삶으로 옮겨 갔다.

권 이사는 93학번이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주인공이 증권사에 합격했다가 입사가 취소됐던 것처럼 IMF는 당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청년에게 가혹한 시기였다. 지금보다 청년 취업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에 밥벌이와 상관없는 시민단체 일에 뛰어든 권 이사의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했다.

권 이사는 "IMF 이후 지역이 더 피폐해졌다"고 말했다. 주변 선후배들이 다 지역을 떠났고, 증권사에서 일했던 한 선배는 "대구에는 정보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로 갔다. 주변인들이 모두 서울로 떠난 뒤 그는 '나는 왜 대구에 남아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때 결심했어요. 다시는 '서울바라기' 하지 않아야겠다고요. 그때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슬로건이 있었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내가 이렇게 한 번 살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크게 생각하되, 삶은 지역에서. 저를 실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염매시장과 약전골목, 종로길, 내가 사는 곳에서 자연스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서울을 소비하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서울이 하나의 '지역'으로 존재하면 문제가 없어요. 지역은 인재를 만들고, 인큐베이팅(배양)하고, 또 복제하는 곳이 돼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서울은 블랙홀이 돼 많은 사람들을 흡수합니다. 지금 서울은 우리와 경쟁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도시와 경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구가 경쟁할 수 있는 다른 도시는 어디일까. 권 이사는 일본 교토를 예로 들었다. 교토는 보수적인 성향, 오래된 건축물이 많은 도심, 수십여 개의 대학이 몰려 있는 교육 도시라는 점이 대구와 닮았다. 그는 "한국에서 대구는 인천, 부산과 경쟁해야 한다. 내가 인천과 부산의 근대도시, 골목 프로젝트를 만드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골목, 지금도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골목은 죽은 곳이다. 골목은 지금도 변하고 있다. 전통 한약방과 약재상이 즐비했던 약전골목에는 미용실과 커피숍, 스파게티집 등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현대백화점 입점 이후 이 일대 골목의 변화를 권 이사는 당연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골목은 변해야 하고, 문제는 변화가 아니라 속도라는 것이다. 그는 "도시에는 업 앤 다운(up and down)이 있다. 저렴한 임대료를 기반으로 사는 사람은 또다시 쇠퇴한 지역에 가서 상권을 만들고 그 지역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외부 자본이 들어와서 약령시가 사라진다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예전에 있었던 것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강압이고, 강박이다"고 말했다.

지금 권 이사의 활동 무대는 공구 골목으로 유명한 북성로다. 일제강점기 대구 최대 상권 지역이었던 북성로에 근대 건축물을 재활용해 문화 자산으로 활용하는 '북성로 근대 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을 중구청과 함께 추진 중이다. 흉물스러웠던 빈집과 폐가들은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등 공간으로 재탄생해 북성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는 이 작업을 "도시를 지우고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대골목과 북성로, 중구를 평생 삶의 터전으로 산 그는 새 목표도 이곳에 세웠다. 이름하여 '1㎞ 프로젝트'다. 집과 직장,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 모든 것이 1㎞ 안에서 이뤄지는 삶이 그가 바라는 행복한 삶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500m 안에 다 있습니다. 하하. 행복한 삶을 찾아 꼭 수천㎞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요."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단순한 진리를 실현하는 법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사진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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