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과서에 없는 삶 학교 밖서 배우죠…청소년 인문학 모임 '강냉이'

청소년들이 세상을 공부하고자 학교 '담장'을 넘었다. '학교-학원-집'을 뱅글뱅글 돌아야 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자신들의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해서다.

이들은 배움터와 삶터, 책과 체험, 나이의 많고 적음, 남자와 여자 등으로 세상을 가르고 구분하는 담을 넘고 싶어한다. 대구의 청소년 인문학 모임 '강냉이'의 소망이다. 강냉이는 최근 담을 넘어 디딘 세상에서 보고 배운 이야기를 엮어 '강냉이 담장을 넘다'란 제목으로 책을 냈다. 2012년 '강냉이, 공부하다 빵 터지다'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학교 담장 너머

강냉이의 겨울캠프가 열리고 있다 해서 1일 찾아간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13명의 회원이 이곳에서 4일간 장승만들기에 도전했다. 둥그런 나무는 4일간 노력이 보태져 장승 모습을 갖췄고, 마침내 완성한 장승을 세우는 날이었다. 변해빈(17) 양은 "밑그림 그리고, 깎고 문지르는 작업이 끝났다"며 "이 장승이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길 기원한다"고 했다.

이들이 이곳을 찾아 장승을 만든 건 송전탑 건설로 인해 삶터가 훼손당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서였다. 주민들은 송전탑이 마을에 들어서면 안 된다며 반대에 나서 공사는 2012년 9월 이후 중단된 상태. 이 때문에 언론에도 여러 번 오르내렸던 마을이다.

오후 2시가 되자 풍물놀이와 함께 장승 굿이 시작됐다. 청소년들은 '함께 살자' '공사 말고 농사' 등의 글이 쓰인 깃대를 들고 그 행렬을 따랐다. 축하공연 때는 노래도 불렀다. 이 모든 게 강냉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모임은 2011년 시작됐다. 2010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물레책방의 '청소년 인문학 교실'이 뿌리다. 중학생부터 새내기 대학생까지 모두 15명으로 구성된 강냉이는 매주 토요일 낮 12시 30분이면 수성구 한티재 출판사 회의실에 모여 2시간 넘게 인문학 공부를 한다.

"왜 강냉이냐고요? 모임 이름을 지을 때 너무 많은 의견으로 머리가 아팠죠. 그때 문득 손에 쥔 강냉이를 보고 이걸로 짓자고 했죠."

나중엔 '강인하고, 냉철한 이성'이라는 뜻을 붙였다.

◆교과서 밖 배움

강냉이의 매력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세상이 정한 틀에 갇히길 싫어하다 보니 즉흥적이고 재미난 제안이 쏟아진다. 출간도 누군가 책을 내보자는 말 한마디로 시작됐다. 주제를 잡고, 책 속에 담을 내용도 모두 직접 해결했다. 표지 디자인도 한 학생이 그렸다.

모임 땐 큰 종이에 각자의 생각을 적고, 그 중 하나의 주제를 골라 책을 읽고 토론한다. 방학 땐 여행장소와 이동방법, 숙소 예약까지도 나눠 맡는다.

지난해 여름 방학에 떠났던 영덕 여행은 최고였다. 김태형(17) 군은 "농가에 3일간 머물며 자연과 호흡하고 때로는 농사일을 돕고, 마당 풀을 베어낸 자리에 텐트를 치고, 모두가 누워 밤하늘을 바라봤던 그 순간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모임이 거듭할수록 회원들은 무슨 일이든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 담장에만 갇혔다면 누릴 수 없었던 뿌듯함이다.

'북성로의 밤'(조두진 저)은 여러 권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에 남았다. 책 속 일제강점기 지명을 찾아가 야외수업을 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소설 속 미나카이백화점 터는 지금은 주차장이 돼 있기도 했다. 아이들은 "지금은 동성로가 번화가지만 일본강점기엔 북성로 상권이 컸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일본인들이 들어와 어떻게 상권을 장악했는지도 가늠할 수 있는 등 대구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지난해 초엔 권정생 작가의 '몽실언니'를 읽으면서 줄거리를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주요 사건과 인물도 추적했다. 이를 통해 남북문제를 공부했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함께 보며 분단의 현실도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모임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법도 배웠다. 지식은 습득해야 하지만 그르다고 판단될 땐 과감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권예지(18) 양은 "강냉이 모임 때는 서로 의견을 내놓느라 시끌벅적해지기 일쑤다"고 했다.

생활습관도 바뀌었다. 김주현(16) 양은 "핵 발전소와 송전탑 문제를 공부하면서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됐다. 예전엔 내가 빈방에 전등을 켜놓으면 엄마가 끄라고 잔소리했는데, 지금은 전기의 소중함을 깨달아 불필요한 전기기구의 스위치를 내리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강냉이는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것이 공부다'고 외친다. 사람과 지내는 것, 사소한 모임과 약속, 글을 읽는 것 등 모든 것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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