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부모 면허증

몇 년 전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생면부지 퇴직 여교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할머니가 된 퇴직 여교사는 자신이 보기에 옹알이를 하지 않는 외손자가 지적 장애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딸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더니 수긍은커녕 도리어 성질을 부렸다. 손자 얘기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한 판 말다툼만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편지를 썼다. 젊은 엄마들을 위해 대구시교육청이 성장 단계별 맞춤식 자녀 교육 매뉴얼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젊은 엄마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시월드도, 친정 엄마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데 쉽지 않다. 임신, 출산, 육아로 이미 직장은 잃어버렸고, 혼잣손으로 키우거나 이웃의 귀동냥으로 기르는 자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예방접종 날짜뿐'이라는 농담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찾아보는 육아 정보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하버마스가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은 가족의 힘이라고 얘기했지만, 이미 한국 가족은 급격한 해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무너진 가족의 자리를 대신할 대안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한 육아 문제를 겪고 있는 30, 40대 엄마들은 오히려 학부모운영위원회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으며, 맞춤식 자녀 교육서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찾아보니 시중에는 판매를 위한 태교와 육아 서적은 많았지만, 정작 엄마들이 나이별로, 성장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곁에 두고 볼 만한 참고 서적은 많지 않았다. 도처에 널린 평생교육도 취미와 요리 자격증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정작 좋은 부모가 되도록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은 별로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영국의 어느 지방 성당에서 부모 면허증을 주는 시스템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시작한 게 대구시교육청의 학부모 역량 개발 프로그램이다. 대구 시내 관심 있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고, 수십 시간씩 연수를 시켜서 수백 명의 학부모 강사를 배출했다. 이들이 유아, 초등, 중학, 고교, 특수학교 등에 나가서 단계별 창의력 배양, 학교폭력, 자기주도적학습, 글로벌 창의 인재 키우기 등에 대해서 강의를 한다. 퇴직 교수도, 석박사급 엄마들도, 명퇴한 교사들도 신청했다. 이들이 지난해 거둔 성과는 가히 대구발 교육 혁명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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