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기의 엘리트 전문직…빚더미 A 의사

재산 다 날리고 신용불량자 신세…빚 갚으려면 월급의사라도 해야죠

우후죽순처럼 병
우후죽순처럼 병'의원이 생겨나고 있지만,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의사들도 많아지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본가 및 처가 재산 탕진(1차 개원 실패)→본인 신용 및 집 담보 대출(2차 개원 실패)→빚더미에 앉은 페이닥터(월급의 절반은 빚 상환)."

빚더미에 앉은 대부분의 의사들은 대체로 위 3단계를 거치며 결국은 빚에 쫓기는 월급쟁이 의사로 전락하고 있다. 세 번의 개원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빚에 쫓기는 페이닥터(Pay Doctor'월급의사)들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심각한 경영난과 고가의 의료장비 도입, 건물 임대료 등으로 빚더미에 눌린 병'의원들은 부도를 내거나, 겨우 이자를 갚으며 연명하고 있다. 의사들은 전공을 포기하고, 돈 되는 피부미용 시술 등으로 겨우 밥벌이를 하고 있다.

◆빚쟁이 의사들…, 제1금융권에선 대출도 꺼려

#1. 전문의 A씨는 지난 2007년 꿈에 그리던 개원에 성공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며 차곡차곡 모은 돈과 친척들에게 빌린 6억여원으로 개원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 달콤했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주말'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늦은 시각까지 의원 문을 열었지만 하루에 10명 남짓한 손님만 찾아왔다. 결국 A씨는 개원 3개월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2. 전문의 B씨는 대학병원 의사로 수년간 열심히 일하며, 능력 있는 의사로 정평이 났다. 5년 전 대학병원을 뛰쳐나와 성형외과 쪽으로 개원을 했다. 장밋빛 희망과는 달리 매월 적자에 허덕이며 1년도 되지 않아 건물주와 임대료 때문에 법적 소송을 벌여야 했고, 결국 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B씨는 옮긴 곳에서도 빚만 더 는 채, 타지역으로 떠났다.

빚쟁이 의사들이 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끝내 신용불량자가 된 의사도 많다.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은행 대출도 어려워졌다. 최근 제1금융권(은행)에서는 의사들에 대한 대출요건을 강화하고 있어, 자연히 제2, 3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의사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다. 지역 금융권에 따르면 전문직 중 신용불량자가 가장 많은 직군이 의사라고 한다.

과도한 빚으로 폐업의 공포에 시달리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로 은행 이자 갚기에 급급한 개인 병원들도 적잖다. 대구의 한 병원장은 "개원을 위해 수십여억원을 빌린 탓에 들어오는 수입 대부분을 빌린 돈을 갚는 데 쓰고 있다"며 "열심히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없다"고 하소연했다.

◆빚 악순환 고리 못 끊는 동네 의원

대구시에 따르면 지역의 동네 의원 10곳 중 3곳이 이달 10일 의료파업에 동참했다. 빚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인지도 모른다. 매번 파업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의료수가 인상은 의사들의 숙원이다.

1977년 건강보험제도 시행 당시 시장가격보다 낮게 책정된 의료수가는 의료계의 오랜 걸림돌이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수가는 12.9% 오른 데 반해 소비자물가는 17.3%, 임금은 17.7%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수와 병'의원은 꾸준히 늘어났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대구지역에 개업한 병'의원이 1천470곳이나 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 병'의원들은 어렵다. 지난해 폐업한 의원은 105개. 이는 병원'약국'조산원 등 전체 폐업 요양기관의 48.8%에 해당한다. 지난 5년 동안 매년 100곳 이상이 폐업하고 있다.(표1 참조)

대구 달서구 상인동에 위치한 부강외과 손창용 원장은 "처음 개원하고 1년 동안은 집에 가져가는 돈이 한 푼도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며 "간호사 임금, 재료비 등 고정적인 관리'운영비만 매달 1천만원이 드는데, 봉합수술 한 번 하면 고작 3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당시의 수입구조로는 본전만 찾아도 다행인 셈"이라고 털어놨다.

치과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대구 달서구 도원동에 위치한 로하스 치과 권태익 원장은 "그나마 치과는 비급여 진료인 보철 치료나 임플란트로 낮은 수가를 보전해왔는데, 요즘은 대형병원이 '반값 할인'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해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돈벌이를 위한 '멀티 플레이어' 전문의

'한우물만 파면 살아남지 못한다.' 요즘 의사들이 말하는 의료계 생존법이다. 의료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의사들은 내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 등 멀티 플레이어(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여러 분야에 걸친 진료를 함)를 자처하고 있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의원 간판에서 알 수 있다. 간판에 표기된 의원 이름 옆에는 기본 4, 5가지의 진료과목이 함께 쓰여 있다. 비급여 진료항목이 많은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필수 옵션이다.

대구의 경우 지난해 전문의 자격이 있는데도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의원(표2 참조)은 모두 203곳으로 5년 전에 비해 13.4%가 증가했다. 또 비뇨기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 100개 가운데 순수하게 비뇨기과 진료만 하는 의원은 단 4개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피부과와 비뇨기과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수입 구조도 7대 3 정도로 피부과 진료가 더 많은 수익을 안겨다 주고 있다.

대한비뇨기과학회 대구경북지회 박남일 총무이사는 "비뇨기과 진료에 필요한 기기를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은 최소 7억∼8억원인데 반해 보톡스, 필러는 장비 비용이 전혀 없는데다 레이저 기기도 1억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며 "전문의들이 투자대비 소득이 낮은 비뇨기과보다는 피부미용에 더 집중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 기능식품의 인기로 시작된 보약의 쇠퇴는 한의원을 폐업으로 내몰고 있다. 폐업의 위기에 처한 한의원은 주력 분야를 보약에서 한방 여드름 치료, 한방 가슴 성형, 한방 다이어트 등 피부미용 분야로 돌리고 있다. 대구한의대 출신의 김형욱 한의사는 "일반 한약재보다는 주로 다이어트나 피로회복 한약재가 주수입원"이라고 털어놨다.

기획취재팀=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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