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WBA 슈퍼페더급 챔피언 최현미 선수

"탈북·비인기 꼬리표 한방에 날리고 싶어요"

"복싱을 하면서 타이틀매치나 시합을 준비할 때 후원사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스트레스만 없으면 좋겠다."

세계권투협회(WBA) 여자 슈퍼페더급 챔피언 최현미(23) 선수는 4월 말 제1차 타이틀 방어전에 나선다. 슈퍼페더급(58.97㎏)보다 한 체급 낮은 페더급 챔피언으로 7차 방어에 성공한 후 지난해 8월 체급을 올려 한국 여자선수로는 전무후무한 두 체급 세계 타이틀 석권이라는 역사를 이뤘지만 그녀는 여전히 다음 타이틀매치를 걱정하고 있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와 동갑내기이지만 여자복싱이 대중스포츠로 자리 잡지 못한데다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후원사가 없어 시합 때마다 스폰서를 찾아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매니저를 자청하고 나선 아버지 최영춘 씨는 "한국 여자복싱 선수로는 처음으로 두 체급을 석권해 기업에서도 홍보 가치가 꽤 있을 것 같은데 든든한 후원사가 없다. 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로 봐주면 좋겠다. 북한에서 온 '탈북자'라서 그런지 스폰서를 구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벽이 아주 높다. 이제 '탈북자'라는 꼬리표는 떼 좋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선수는 10년 전인 2004년 온 가족과 함께 평양을 탈출, 한국에 왔다. 곧바로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녀가 입학한 중학교에는 그녀 같은 탈북 청소년이 7명 있었지만 졸업장을 받아든 것은 그녀뿐이었을 정도다.

북한에서 김철주사범대학에서 복싱 유망주로 뽑혀 복싱을 시작했던 그녀가 남한에 와서 다시 글러브를 끼게 된 것도 '탈북자'라고 무시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지 그녀는 담담하게 말한다.

"스포츠나 음악으로는 세계가 하나가 될 수 있잖아요. 제가 북한에서 운동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한국에 와서도 저 나름의 소통 방법으로 운동을 한 거 같아요. 복싱이 제가 한국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 준 거죠."

그녀는 드디어 최연소 세계 챔피언(19세)에 올라 7차 방어전까지 치를 정도로 롱런했고 두 체급 석권의 성공 신화까지 만들어 냈다.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최 선수와 '국악소녀' 송소희, 가수 설운도, 다문화 어린이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을 국민대통합 홍보대사에 위촉했다. 북한이탈주민인 그녀의 홍보대사 위촉은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인 지역과 세대, 남과 북, 이념과 계층을 넘는 국민대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담고 있다.

-그저께 국민대통합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국민대통합 홍보대사'라는 무거운 자리에 위촉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동시에 큰 사명감을 느낀다. 아직 어려서 세상일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남과 북이 소통하고, 각 지역이 마음으로 하나가 되고, 모든 연령에서 생각의 차이가 없는 대통합에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특히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저를 보고 힘을 얻어서 서로 같이 뭉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고 한 분 한 분 모두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한국에 와서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목숨을 걸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정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처음 왔을 때는 뭐가 힘든지도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착하는) 그 단계에서 많이 튕겨져 나가니까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북한에서 살기 위해 목숨 걸고 여기 왔는데 공부를 안 하다가 철없는 애들이랑 공부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힘들기도 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복싱이 있었다. 국가대표가 됐고, 고 3때 세계 챔피언이 됐다."

북한에서 유소년 대표선수로 활약했던 그녀는 한국에 와서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을 지낸 장정구 씨의 소개로 서울 동부은성체육관 이용훈 관장을 만나 글러브를 다시 꼈다. 이후 여자복싱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프로로 전향하는 등 지금까지 쭉 함께해 오면서 세계 챔피언 시나리오까지 성공시켰다. 당초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였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복싱이 정식종목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프로로 전향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 챔피언이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아버지 최 씨는 "세계 챔피언이 되면 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세계 챔피언이 됐는데도 후원사가 없어서 시합이 무산될 지경에 빠진 적도 있고 힘들게 7차 방어전을 마치고 체급을 올려 다시 성공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시합 때마다 스폰서 때문에 힘이 든다"고 말했다. 7차 방어전 때는 후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한 업체가 대전료 등을 지불하지 않아 고소하는 등의 사태도 벌어졌고 매니저가 잠적한 적도 있었다.

-체급을 올려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페더급과 슈퍼페더급은 2㎏ 차이가 난다. 저 같은 경우에는 평소 컨디션을 유지하다가 그대로 시합에 나가는데 상대는 8~10㎏을 빼서 나오기 때문에 슈퍼페더급에는 힘이 좋은 선수들이 많다. 2㎏ 차이가 20㎏ 차이로 느껴진다. 체급을 올려서 나간 후 상대와 어깨를 딱 부딪치니까 제가 튕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래서 체급을 함부로 올리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쭉 페더급(57㎏)을 뛰었다."

-여자복싱이 2016년 올림픽에서는 정식종목이 됐다. 올림픽이 다음 목표인가.

"여자복싱이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고 또 프로선수도 나갈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다. 복싱을 한 지 14년째가 되는데 이때까지 후회는 없다. 다만 프로에 와서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같은 조금 더 큰 무대에서 더 유명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시합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과 아마추어로서 국가대표를 포기해야 했던 일이다. 이제는 올림픽에도 나갈 수 있게 됐으니까 다음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 그날이 은퇴하는 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큰 무대에 설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여자복싱계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다.

"그다음 올림픽 때는 나이가 있으니까…. 또 8월에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여자복싱이 다음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됐지만 태릉선수촌에 여자 복싱 코치가 한 명도 없다. 이제 시작이다. 제가 아직 어리지만 복싱계에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직 한 번도 지지 않았다.

"9전 8승 1무로 무승부가 한 번 있었다. 사실 저는 (링에서) 잘 맞지 않는다. 복싱을 하면서 제가 '행운아'로서 복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한 번도 링에서 피를 본 적이 없어서다. 자부심과 같은 것이다."

-그래선가 연습할 때 남자선수들과 스파링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

"지금껏 이용훈 관장님과 줄곧 해왔다. 남자선수들과 하면 부상당할 위험도 없지 않아 있다. 특히 시합 전에 자칫 잘못해서 부상당할 수 있어서 피한다. 남자선수와는 뼈가 다르기 때문에 같이 부딪쳐도 저만 부상당할 수 있다. 그런 것도 있을 수 있고 관장님같이 평소 노련미가 있는 선수와는 편하게 할 수 있지만 아마추어 남자선수들은 (스파링을 하다가도) 흥분하게 된다. 처음에는 '여자를 어떻게 때리나' 하다가 스파링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흥분해서 '너 죽었어' 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도 있다.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된다.(웃음) 그때부터는 스파링이 아니라 싸움이 되고 성 대결이 된다. 저는 여자기 때문에 때려도 본전, 맞아도 본전이지만 상대 남자선수는 지면 우스워지게 된다."

-격투기 쪽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지 않았나.

"격투기나 UFC 는 올림픽 종목이 아니다. 복싱은 스포츠의 틀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딱 스톱할 수 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사람이 두 눈을 쳐다보고 하는 운동 중에서 복싱이 제일 힘든 것 같다. 빤히 쳐다보면서 서로 때리고 피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복싱은 아주 지능적인 운동이다. 다른 운동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쓰러졌는데도 때리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싸움이다."

-복싱의 매력은 무엇인가.

"거듭 얘기하지만 복싱은 지능싸움이다. 첫 1라운드 안에 상대의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다 파악해야 2, 3라운드를 풀어갈 수 있다. 상대가 잽을 낼 때 어깨를 흔든다든가, 눈빛이 흔들리거나 발이 빠진다거나 하는 걸 다 찾아내야 한다. 잽을 낼 때 그 다음 다음 수(手)까지 생각해야 제 공격이 성공할 수 있다. 그냥 '어퍼컷'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세 수 전에 감춰둔 것이 어퍼컷이다. 상대의 파워를 느끼기 위해 일부러 맞기도 한다. 맞아봐야 반격할 수 있다. 이런 것이 복싱의 재미다.

남자 선수들과 스파링할 때도 대부분 '남자들이 이기겠지' 여기겠지만 제 체급의 남자들을 한 방에 보낼 때 그 짜릿함은 어떻게 표현하기 어렵다.(웃음) 그 선수의 스타일을 제가 먼저 읽은 것이다. 누가 빨리 읽느냐가 그 시합을 결정하고 체력이 바탕이 돼야 상대를 이길 수 있다."

-복싱 외에 한국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운동을 하면서 시합 준비할 때의 후원자 스트레스만 없으면 좋겠다. 그리고 '탈북자' 출신이라는 꼬리표보다는 강원도나 경상도 사람처럼, 평양 사람으로 여겨주면 좋겠다.

제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도 가끔 김정일이나 김정은에 대해서 온갖 이야기들을 써놓은 분들이 있다. 그런 일도 없었으면 한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캄보디아에도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베풀어 주고 싶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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