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주의 정치 이슈] 주민 번호 개편 서두를 때

수집 허용 법령 866개나…이러니 샐 수밖에

올 초 우리 국민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잇달아 겪었다. 역대 유례가 없는 신용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사건에 몸서리치다 이번에는 통신사 KT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겪고 있다. 국민적 불안이 심각한 지경이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13일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사건에 대해 "근본적 치유가 가능한 대책을 수립, 시행해 확실한 재발방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곪은 종기는 한꺼번에 수술하는 것이 근원적 치료가 되듯이 그동안 누적된 개인정보 유출과 불법유통을 모두 적발해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불안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서 정치권에선 주민등록번호 개편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요구하는 곳이 과다하다

1968년 도입된 주민등록번호는 공'사적 영역을 넘어 개인 신분 인증 용도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평생에 한 번 발행되고 수정도 불가능해 개인식별기능으로는 그만이다. 하지만 행정, 금융, 의료, 복지 등 각 분야에서 관행적으로 과다하게 수집,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도 외에 지나치게 오'남용되고 있다. 유출 사고로 인한 개인정보 침해 피해 우려가 숙지지 않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매개로 축적, 수집, 관리된다. 지난해 한국인터넷진흥원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상담 중 12만9천103건(72.6%)이 '주민번호 등 타인정보 도용'에 대한 침해신고였다. 노출되거나 유출된 주민등록번호가 예금의 부정인출, 대포통장 개설, 대포폰 가입, 전화사기, 신분도용 등 범죄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외국의 신분증명 제도는 다르다

미국은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사용한다. 이 개인식별번호는 9자리로 신청지역, 발급그룹, 발급순서가 담긴다. 생년월일이 아니다. 캐나다는 무작위로 배분된 사회보험번호(Social Insurance Number)를 사용하는데 미국과 함께 아주 제한된 공공행정 업무에만 활용한다.

일본은 주민기본대장법에 따라 주민표 코드가 있다. 하지만 이 주민표 코드에는 개인의 민감한 정보가 없이 무작위 숫자 10자리와 검증번호 1자리로 구성된다.

우리나라랑 가장 유사한 주민번호는 스웨덴에서 쓰고 있다. 번호 자체도 생년월일로 구성되며, 출생신고와 동시에 번호가 부여된다는 점이 유사하다. 하지만 이 번호는 조세, 사회보장, 병무행정 등 공공분야에서만 사용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일부 국가를 빼고는 개인식별번호에 개인의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지 않다. 또 국가에서 발행한 개인식별번호는 극히 제한된 공공행정 업무에 사용한다"며 "그 외 민간 영역에서는 개인 신분인증 수단으로 개인식별번호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개선 과제는 없나?

국회 입법조사처는 주민등록번호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으려면 '주민등록법'에 이 번호의 사용 목적을 명확히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필요하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각종 법령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의 수집, 이용을 허용하는 법령은 모두 866개(법률 77개, 시행령 404개, 시행규칙 385개)에 이른다.

주민등록번호 재발급 요건 완화도 필요하다. 한번 부여된 번호는 변경할 수 없다. 하지만 번호 유출로 재산상 손해가 불가피하다든지 그 밖의 신체적 위해, 범죄 활용 우려 등 피해가 우려된다면 변경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민등록증 외 유사신분증에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운전면허증, 여권, 공무원증, 각종 출입증, 사원증, 학생증 등에 굳이 명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다. 유사신분증의 고유번호만으로도 개인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

또 분야별로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인증수단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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