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가까운 사람들이 영화나 CF 배경음악을 통해서 많이 들어본 'Nessun Dorma'(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러 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멋지게 불러 주고 싶지만 사실 그 노래는 내 능력 밖이다. 이 노래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왕자가 부르는 아리아로 마지막 가사인 'Vincero'(나는 이기리라) 부분을 부를 때 강하고 폭발적인 고음이 요구되는 노래여서 영웅적인 목소리를 가진 '드라마틱 테너'가 불러야 제 맛이 나는,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테너라면 어떤 오페라의 아리아도 다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작품에 따라 필요한 목소리는 사실 따로 정해져 있다. 이러한 테너의 목소리는 밝고 가벼운 소리인 레쩨로, 서정적인 리릭, 극적이고 웅장한 드라마틱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가령 세계 3대 테너로 알려진 호세 카레라스와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로 예를 들어보면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리릭과 레쩨로의 중간 정도인 리릭 레쩨로 테너이고, 호세 카레라스는 리릭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드라마틱 테너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소리의 굵기가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데 이는 곧 음색(音色)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음색은 음의 높낮이가 같아도 악기 또는 사람에 따라 달리 들리는 소리의 특성을 뜻한다. 이 음색의 차이로 오페라에서 젊고 세련된 귀족 배역일 때는 깨끗하고 가벼운 레쩨로 테너를 필요로 하고 반대로 칼라프 왕자처럼 영웅적인 역을 노래하는 테너는 굵고 힘 있는 드라마틱 테너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트로트 가수가 랩을 잘하기 어렵고 댄스 가수가 트로트 가수의 맛을 살리기 어렵듯 테너도 자기의 목소리에 따라 잘 부르는, 강점이 있는 노래가 정해져 있다. 물론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해 내는 성악가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테너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오페라 섭외가 들어오면 관람객을 위한 좋은 공연을 위해 고사하는 경우가 많고 본인 역시 여러 차례 그런 경험이 있다. 욕심은 화를 불러오는 법. 자칫 무리하게 노래해 자신의 목소리를 잃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에서도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가 있듯이 오페라도 작품에 따라, 적당한 음색을 내는 테너는 세분화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레쩨로 테너에 근접해 있는 내게 드라마틱한 노래인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욕심 내서는 안 되는 노래다. 대신 드라마틱한 테너가 소화하기 어려운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더 잘 부르기 위해 노력한다. 그게 내게 더 잘 어울리는 노래이고 잘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신현욱 계명대학교 성악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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