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교육정책의 근본을 수술하라

지난해 4월, 정부가 전국 1만8천가구의 남녀 1만3천385명을 대상으로 벌인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 조사' 결과를 보자. 자녀 1명을 낳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키우는데 모두 3억896만4천원의 양육비가 들어간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는 자녀 둘을 키우려면 6억여원이 필요하다. 재수, 휴학, 어학연수 비용을 빼고서다.

연봉 5천만원을 받는 근로자가 억세게도 운 좋게 30년을 근무해 한 푼도 안 쓰고 15억 원을 모았다고 할 경우 3분의 1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여기에다 자녀 둘 결혼시키고 집 마련해주려면 노후준비는 어림도 없다. 과거에는 삶의 질을 따질 때 엥겔지수(생활비 중 식비)라는 지표를 사용했다. 하지만 요즘은 교육과 주거 상태를 기준으로 삶의 질을 따진다. 양육과 교육비가 생애 전체수입의 3분의 1을 넘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 보기 어렵다.

1980년대, 25~30%대이던 대학진학률은 2005년 이후 3배에 이르는 80% 선을 넘어섰다. 더구나 대학졸업생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양질의 일자리는 한정돼 있어 청년실업과 중소기업 인력부족이라는 불일치 상황이 계속된다. 지난해 3월 공개된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 연계 취업통계'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의 평균 취업률은 55.6%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대학진학이 필수코스가 되어 온 원인은 대학을 졸업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대학은 단순히 학력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이었고, 이것에 따라 직장과 결혼문제가 좌우됐다. 국가 정책 역시 대학진학률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고교평준화가 도입된 1974년 이후 정부는 대학 공급 확대정책을 추진해 고등교육기관의 수(數) 자체가 크게 증가했다. 반면 경쟁력은 갈수록 낮아졌다.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 대부분 유럽 국가들의 대학진학률은 30% 정도다. 독일은 경제성장이 유럽 최고 수준이지만, 지금도 대학진학률을 낮추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대졸자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려면 우리의 경제성장률이 최소 매년 20% 이상은 되어야 한다지만, 최근 경제성장률은 4%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나라 대학은 기업이나 시장에서 원하는 과정과 기술을 교육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졸업하고 기업체들이 인력을 고용하더라도 재교육을 해야 한다. 현실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학교가 공급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안 되는 상황이다. 우리 학교가 현장이 요구하는 효용성 있는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선 대학진학률을 낮춰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대졸자 못지않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3월 10일 국회 창조경제활성화특별위원회 회의에서다. 교육부가 보고한 내용 가운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창업을 한다든지, 또 전문대학을 고등교육기관으로 만든다든지, 마이스터고를 활성화한다는 등은 방향이나 내용에서 좋은 정책들이었다. 이런 정책들이 진작부터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고졸자의 대학진학률이 지금보다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는 적절하게 공급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이라도 직업과 연계되지 않고, 그 직업의 소득이 낮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교육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교육정책은 현실에 맞도록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난달 26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페터 프리드리히 장관은 '순항하는 독일경제의 비결'이라는 강연에서 "독일은 대학교수 월급이 같은 연령 대의 직업학교를 나온 숙련공보다 훨씬 적어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며 숙련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교육정책도 이젠 위선과 허위의 탈을 벗어던지고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김희국/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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