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복어 여행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잘빠졌으면 멋있는 여인이란 소리를 듣는다. 거기에다 살짝 강짜를 부릴 줄 알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생선은 그렇지 않다. 외모가 미끈하게 생겼어도 맛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형편없는 고기로 취급받는다. 생선 세계에선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통하지 않는다.

복어의 생김새를 설명할 때 미모라는 낱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그냥 복부비만의 짜리몽땅 생선이라면 가장 알맞은 표현이다. 복어는 오로지 살점의 맛과 내장의 독을 자만의 가치로 여길 뿐 성형외과 간판은 쳐다보지 않는다. 그런 복어지만 미학(味學)적 차원이라면 멋있는 여인과 청평저울에 올려 견줘볼 만하다. 맛에 곁들여지는 '깡아리'는 신랑 잡아먹는 계집이라도 복어를 이길 수 없다. 보잘것없이 태어나 제멋대로 자랐지만 여러 사람을 '쥑이고도' 남는 게 복어란 생선의 숨은 맛이자 독이다.

투명한 살점을 얇은 칼로 대패질하듯 회로 쳐 푸른 바다가 그려져 있는 큰 쟁반에 붙여놓으면 그건 음식이 아니라 예술이다. 마치 '사랑하면 하늘도 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의 바다 풍경처럼 회 토막이 푸른 치마를 입은 여인과 함께 깃발로 나부끼고 있다. 비욘드 호라이즌.(Beyond horizon)

회를 뜨고 남은 대가리와 뼈로 끓인 복지리와 복국도 일미다. 끓인 후 제독(除毒)을 위해 슬쩍 끼얹은 푸른 미나리도 한결 싱그럽다. 짜리몽땅 미모가 술꾼들의 해장 탕으로 변주되면 그것은 순교에 가깝다. 사람이 종교를 위해 목숨을 던지면 성인의 반열에 올라 기림을 받는다. 복어도 술을 신봉하는 주교(酒敎)의 순교자로 추어올린다면 나의 상상이 일반 상식을 추월하여 교통사고를 낸 것일까.

이 세상은 창세 때부터 대칭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낮과 밤이 그러하고 남과 여가 대립에서 화합을 모색하는 존재들이다. 선과 악 그리고 약과 독도 같은 맥락이다. 모두가 동전의 앞뒤처럼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서로 물고 연결되어 배턴 없는 릴레이 경기를 하고 있다.

대낮이 일몰을 거쳐 어둠으로 빠져들듯이 복어의 맛도 한겨울이 지나 봄 냄새가 풍기면 서서히 독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신달자 시인은 "하늘의 빛과 어둠의 분량이 비슷한 청색의 시간이 되면 삶의 설렘을 느낀다. 날이 밝으면 청색의 빛은 사라지지만 그것은 저녁 어둠의 청색 속에 닿았다가 다시 아침으로 흐른다"며 순환의 이치를 말한 적이 있다.

복어 회는 영물에 속한다. 송이와 마찬가지로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면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복어 회를 먹을 기회를 늘리기 위한 묘안 하나를 생각해냈다. 모임 회원 중에 자녀의 혼사 전에 반드시 복요리로 댕기풀이하게 하는 것이다. 계획은 적중했고 실천 또한 순조로웠다.

복어 파티가 계속되면서 '눕을 젓가락' 소동이 일어났다. 어느 대식가 친구는 젓가락을 눕혀서 한 번에 서너 모타리씩 집어 먹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먹이에 대한 박탈감이 상심의 수준으로 치달은 것이다. 그러다가 그 친구의 차례가 돌아왔다. 동해의 어느 바닷가 횟집에서 원정 파티를 벌였다. 출발 전에 '오늘은 모두가 눕을 젓가락질을 하여 본때를 보여 주자'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따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음식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고 먼저 달려온 아이가 먹도록 했다. '시작' 사인이 울렸지만 달리는 아이는 없었다. 손 잡고 걸어와 함께 먹었다. "왜 뛰어가지 않았니." 아이들은 "우분투(ubuntu) 우분투"라고 고함을 질렀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는 뜻이다.

이 모임은 그럭저럭 해체되었지만 혀끝에 남아 있는 복어의 추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요즘도 강원도에 눈 소식이 전해지면 임과 뽕을 함께 딸 심산으로 복어 여행에 나서곤 한다. 올해는 복어가 흉년인 모양이다. 예년 같으면 주문진항 주변 가게마다 복어가 넘쳐났는데 어시장의 난전에도 복어는 눈에 띄지 않았다. 회 식당 수족관에 맥 빠진 밀복 몇 마리가 게으른 헤엄을 치고 있을 뿐 가격도 ㎏당 6만원으로 엄청 비쌌다.

하는 수 없이 복어 여행 때마다 들렀던 거진항 자매식당(033-682-7533)을 다시 찾아갔다. 복어 세 마리와 도다리 세 마리를 단돈 10만원에 흥정했다. 회와 지리로 오랜만에 갈증을 풀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오, 화라 원더풀 월드'(Oh, what a wonderful world).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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