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김밥이란 이밥에 소고깃국만큼이나 로망의 음식이었다. 그 시절 얼굴 하얀 아이 하나가 전학을 왔다. 점심으로 싸온 도시락에 지금껏 풍문으로만 듣던 김밥이란 것이 새까만 망토를 걸치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주위 친구들이 금세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저 맛이라도 보고픈 마음에 중인환시(衆人環視) 속에서 웅성거렸다. "그래 맛이나 봐!" 하고 인심 좋게 내민 도시락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미처 손길이 닿지 않아 입맛만 다신 아이들의 힘 자랑(?)에 교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다음날 얼굴 하얀 애를 제외한 모두는 운동장에서 담임 선생님의 노여움 속에 기합이 끝날 줄 모랐다. 알고 보니 그 얼굴 하얀 애는 새로 부임해온 면장집 딸. 전학 온 첫날부터 얼굴에 난 생채기를 본 면장님이 노발대발, 결국 교장 선생님을 거쳐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을 나선 결과였다.
이후 장가를 들고 아들이 자라 소풍을 가자 아내는 온갖 정성을 들여 김밥을 싼다.
꾸덕꾸덕하게 밥을 짓고 단무지, 햄, 당근, 시금치, 계란 지단 등으로 속을 만들어 조그마한 대발에 넣어 둘둘 말더니 "어머나 옆구리가 터지네!" 라는 탄식 몇 차례에 기술자가 다 된다. 그 모습을 보며 군침을 흘리다가 은근슬쩍 꼬랑지 하나를 입에 넣어 오물거리면 "애들 것도 모자란다"며 핀잔을 주다가는 인심 쓰는 척 한 줄을 썰어 쟁반에 담아 무릎 아래에 슬며시 밀어 놓는다. 정성과 손맛이 들어가서인지 그 김밥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요즈음은 그 귀하디 귀한 김밥이 길에 널려 천지다.
그런 기억에 아내에게 내일 산에 가는데 김밥 좀 말아 달라고 하자 "그냥 사서 가!"라며 도리어 큰소리다. 그날도 김밥 말아달란 말은 입 밖에도 못 내고 새벽녘 김밥집에 들어선다.
단도직입적으로 "두 줄!" 하면 만사 휴! 막 문을 나서려는 찰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내 또래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와 세 줄이면 거스름돈이 1천400원인데 2천600원을 받았다며 계산을 맞춘다. 모른 체 그냥 갔을 법도 한데 참 경우 바른 분이란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멀어져가는 그분의 뒷모습에서 지금은 기억도 희미한 얼굴 하얀 그 애가 본인 도시락은 매양 친구들에게 적선하고 입안에서 까칠한 노란 조밥에 찬으로 군둥내 물씬 풍기는 김치가 뭐에 그리 맛있다고 입맛을 다시던 모습이 노랗게 오버랩된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