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미나리 타령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야인미근 원헌지지존'(野人美芹 願獻之至尊)이란 문구가 있다. 가난한 사람이 임금에게 좋은 미나리를 바친다는 의미이다. 조선 중기 문신 유희춘은 이 같은 내용의 질박하고 꾸밈없는 시조 작품을 남겼다.

그렇게 생긴 말이 근헌(芹獻)이다. 변변치 못한 미나리를 바친다는 뜻으로, 남에게 물품을 건넬 때나 의견을 적어 보낼 때 겸사로 쓰는 말이다. 곡절 많은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던 어느 시인은 혼탁한 세계의 한복판에 심겨 있으면서도 천성을 잃지 않는 미나리의 속성에 주목했다.

'제 몸속에 정화 장치를 가진 미나리는, 탁하고 더러워진 물에 일부러 심어놓아도, 장바닥에 앉아 맛있게 국밥을 먹는 것처럼 웃는다'라며 어지러운 세태의 한가운데에서도 웃음을 보일 수 있는 미나리의 경지를 노래했다.

대구 성악계의 대부로 '봄나들이' 등 주옥같은 동요와 숱한 교가를 작곡한 음악가 권태호는 1950년대 향촌동에서 통음을 하고 대취한 날에는 미나리꽝을 비단 이불로 여기고 누워 자기도 했다. 무구한 예술가의 감각에 천진한 웃음을 지닌 미나리의 이미지가 화답한 것일까?

자고로 봄 미나리의 계절이다. 미나리는 봄의 전령에 다름 아니다. 대구의 한 원로 문인은 '삼겹살을 구워 생미나리 쌈에 싸서 먹으면 좋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이상'이라며 봄 미나리 칭찬에 앞장선다. 미나리에는 계절과 향기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가 보다.

한약명으로 수근(水芹) 또는 수영(水英)이라 부르는 미나리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각종 비타민은 물론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해 해독과 혈액 정화에 뛰어난 효능을 지니고 있다. 그 맛이 시고 달고 쓰고 매우며 상큼하면서도 쌉싸래하니, 인생의 맛을 지녔다고 할까.

그래서 나이가 지긋한 상춘객(賞春客)이 겨우내 묵은 몸과 마음의 때를 씻어내기 위해 너도나도 미나리꽝을 찾는 모양이다. 봄 미나리가 인기를 더해가면서 미나리를 재배하는 시설하우스 농가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겨울 가뭄도 원인이겠지만, 지하수를 많이 사용하는 미나리 재배의 영향으로 대구 팔공산 일대에는 물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무슨 일이든 지나친 게 문제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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