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일당 5억 원

1995년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펴내면서 가난한 나라 국민의 생명 가치는 15만 달러, 부유한 국가의 국민은 150만 달러로 평가했다. 이에 개발도상국 대표들은 "이는 기후변화로부터 가난한 나라의 시민을 보호하는 것보다 돈 많은 나라의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본전을 뽑는 데 더 유리하다는 뜻이냐"며 분개했다. 이런 항의에 부딪히자 IPCC는 소득수준별 생명의 가치에 대한 경제적 분석을 철회하고 인간의 생명은 부자든 빈자든 똑같이 100만 달러의 가치를 갖는다는 타협안을 마련했다.

이 같은 '공평한' 평가는 과연 현실에서 작동할까. 전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9'11테러 희생자 보상 기금'의 지극히 차별적인 평가 보상이다. 연봉 400만 달러 이상인 8명의 보상액은 640만 달러, 저임금 희생자는 25만 달러였다. 30대 남성은 280만 달러, 70세 이상의 남성은 60만 달러 이하였으며 여성 희생자의 보상금은 남성 희생자보다 평균 37% 낮았다. 직업과 소득, 연령과 성별에 따라 인간의 값어치가 달리 매겨진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기금 운영자였던 케네스 파인버그는 매우 괴로워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기록한 저서 '생명의 가치는 무엇인가'에서 "만약 이런 종류의 기금을 다시 설립한다면 모든 희생자에게 똑같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술회했다. "증권거래인의 가족이나 접시닦이의 가족이나 미국 재무부로부터 똑같은 액수의 수표를 받아야 한다."

법원이 법의 이름으로 일당 5억 원짜리 노역을 제안하고 피고인이 이를 받아들이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49억 원의 벌금 대신 일당 5억 원의 노역을 선택한 것은 법관이 법과 법원과 법관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 사회를 얼마나 '희화화'(戱畵化)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블랙코미디이다.

이런 소극(笑劇)을 보면서 국민은 득도(得道)한 선승(禪僧)처럼 천둥소리와도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의 노역은 하루에 5억 원의 가치를 생산하는 반면 무지렁이 백성의 노역은 그 1만분의 1밖에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 결론적으로 사람의 값어치는 빈부귀천(貧富貴賤)에 상관없이 똑같다는 도덕책의 말씀은 '×소리'라는 것이다. 아! 멋진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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