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세 모녀 세 모자

#세 모녀

서울 송파에 세 모녀가 살고 있었다. 형편이 어려워 두 딸과 어머니가 휴대전화 한 대를 나누어 썼다. 스마트폰도 아닌 2G폰을.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최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도 하고 카톡도 하고 오락도 하는 세상인데. 3G도 구닥다리라고 놀리는 CF가 유행하는 최신형 중독 시대인데. 아주 오래된 컴퓨터와 작은 텔레비전이 놓인 방 안에 '마지막 집세입니다'라고 쓰인 봉투에 공과금과 마지막 월세가 들어 있었다. 세 모녀는 세상을 떠나는 날도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대체 뭐가 죄송하단 말인가? 세상을 떠나는 날도 집세와 공과금을 챙겨 둔 이 착한 세 모녀가 말이다.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 살았다. 두 딸은 신용불량자여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큰딸의 수첩에는 1년간의 당뇨 수치가 기록돼 있었다. 경찰은 "돈이 없어 병원도 못 가고 약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 모녀의 비극은 어머니가 넘어져 오른팔을 다치면서 시작됐다. 그 적은 수입마저 끊기니 세 모녀는 월세와 공과금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벼랑 끝에 서 있던 세 모녀에게 우리들은,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고 그녀들은 원망도 없이 연신 죄송하다며 세상을 마감했다.

#세 모자

세 모자가 있었다. 두 아들의 엄마인 변혜정 씨는 한때 연봉 1억 원이 넘는 잘나가는 작가였다. 그런데 11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중증근무력증, 뇌종양, 천식… 10여 가지의 합병증이 그녀를 찾아왔고 병마는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그녀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그를 지키기 위해 남편은 회사까지 그만뒀는데 병원비는 1년에 1억 원씩 들어갔다. 감당을 할 수 없었다. 주민센터, 구청, 시청에 손을 내밀었지만 다들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2011년까지 있지도 않은 추정 소득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11년 투병 생활에 그녀가 받은 도움은 최근 석 달 동안 복지관에서 매달 준 40만 원이 전부였다. 월세가 밀려 있는 임대주택에서도 쫓겨날 지경이 되자, 몸부림을 쳤다. 유명인의 트위터에 SOS를 친 것이다. 대통령의 트위터에도 수차례 도움을 청했으나 답은 없었다. 돌아오는 건 대답 없는 메아리뿐이었다. 그러다가 3월 12일 트위터에 "저를 도와주십시오. 빌려 주시는 것도 좋습니다"라며 계좌 번호를 올렸다. 일반인들을 향한 마지막 호소였다. 이번엔 응답이 있었다. 318만 원이 쌓였다. 자신도 형편이 어려워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보통 사람들의 작은 도움이 그녀를 살렸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4년간 얼마나 살기 위해 노력했고, 복지 제도의 잘못된 점을 고쳐달라고 외쳤는지 밝혀달라고 말했다.

위에서 든 세 모녀와 세 모자 이야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내가 그 어머니였다면 우리 딸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침저녁 출근길과 퇴근길 문득 생각하게 된다. 그때마다 무거움과 답답함이 다가온다.

학교 때 사회 선생님께서 "사회는 네모고 사람들은 동그라미다. 동그라미들이 네모 안에 모여 있으면 빈틈이 발생하게 된다. 그 빈틈을 채워야 하는 것이 바로 '서로'다"고 말씀하셨다. 이 빈틈을 채우는 '서로'가 바로 이 시대 최대의 화두인 복지가 아닐까? 빈틈이란 서로 챙기고 채워나가야 한다. 정부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찾아다녀야 한다. 말이 없다고, 가만히 있다고 어려움과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수치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어려울 수 있고 그런 누구나 손을 내밀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빈틈은 늘 발생한다. 그러므로 구성원인 우리도 주변의 신음 소리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그들의 빈틈을 찾아 채워나가야 한다.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듣다 보면 마음이 아파 귀를 막고 싶은 순간도 있다. 외면하고 싶은 유혹도 너무 강하다. 그러나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작은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밀 때 우리도 작은 구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언경/채널A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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