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영화 '스케치' 배우 고은아

상처받은 화가의 사랑 얘기…'노출' 많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배우 고은아(26)는 자신감이 넘쳤다. 27일 개봉한 영화 '스케치'(감독 이혁종)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 보였다. 꽤 수위가 높은 베드신과 노출이 있었는데도 개의치 않는다. 영화가 베드신과 노출에만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인 듯하다.

언론에 공개되기 전 '스케치'는 노출과 관련해 원색적인 마케팅을 펼치지 않았다. 영화의 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여배우의 노출, 베드신을 팔지 않아서인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언론의 관심을 끌어 대중에게 어필해야 하는 저예산 영화로서는 선택하기 쉽지 않은 방향이다. 그래도 제작사, 감독, 배우 등 많은 이들이 바란 일이었다. 뚜껑을 연 영화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감각적인 멜로드라마로 눈길을 끌고 있다.

고은아는 "처음부터 베드신, 노출로 홍보하지 말자는 얘기가 많았다"고 웃었다. "오랜만에 작품에 출연하는데 노출이 있다고 하면 '이제 하다 하다 안 되니 벗는 걸로 나오는구나'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작품을 선택한 배우는 소재가 좋고, 작품이 좋아 출연을 하는 건데 말이죠. 그런 고정관념이 아쉬워요."

고은아는 저예산으로 제작될 '스케치' 시나리오를 보고 단번에 매료됐다.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고 덥석 출연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베드신이 있는 건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제가 이 작품 하고 싶다고 하니깐 회사 실장님이 '진짜냐?'고, '다 읽어 본 것 맞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다 읽진 않았는데 하고 싶다'고 재차 말했어요. 읽다 보니 노출이 있더라고요. 헤헤헤."

앞서 고은아에게 노출이 있는 작품 제안이 여럿 들어왔다. 거절했다. 여배우를 벗기기 위한 작품이었고, 너무 과한 베드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은아는 "'스케치'는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나눴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며 "전혀 반감이 없었다"고 만족해했다.

"솔직히 말하면 겁도 났죠. 대역 얘기도 나왔어요. 그런데 내가 나오는 건데 다른 사람의 몸이면 이상할 것 같았죠. 물론 처음엔 '대역 쓰면 마음은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대역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사라져버렸어요."(웃음)

물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감독님한테 '처음이라 무서워요. 두렵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믿을 사람이 감독님밖에 없다'고 했는데, 감독님으로부터 '섹스어필한 쪽으로 찍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사랑스럽게, 예쁘게 찍고 싶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반해버렸다"고 회상했다. "배우를 존중하는 느낌이 풍겨 나왔다"는 고은아.

'스케치'는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녔지만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화가 수연(고은아)이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남자 창민(박재정)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어진다. 특히 그림을 그리는 수연의 모습이 고은아와 잘 어울린다.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아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때 교실에 있는 것보다 미술실에 더 많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 해봐서 그런지 촬영장에서 어색하지 않고 잘한다고 해주셔서 좋았어요. 수연이라는 캐릭터도 이름만 수연이지 솔직히 저였다고 보면 돼요. 수연이 작업실에서 상처받고 혼자 있는 모습이 실제 제 모습이에요. 제가 연기하는 걸 보면서 슬프기도 했어요. 사람들에게 치이고 다녔을 때의 슬픔을 표출하고 있더라고요."

연예계에서 활동하며 겪은 상처에 이골이 난 듯 보인다. 스무 살 초반, "은둔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고은아. 영화제에서 입은 드레스 탓에 선정성 시비 등 여러 가지 말들과 반응에 상처가 깊은 듯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물고 있다. 다행이다.

"사람들이 평생에 나눠서 당해야 할 일을 저는 성인이 되면서부터 다 겪은 것 같거든요. 다사다난했죠. 그런데 그게 오히려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훈을 줬어요. 제가 긍정적으로 바뀌더라고요. 예전에는 눈물이 많았는데 요즘은 모른 척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그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소수의 사람 때문에 내 신념을 바꾼다거나, 상처받고 낭떠러지로 떨어지진 않을 거예요."(웃음)

상대역으로 나온 박재정과의 연기는 시간이 짧아 아쉽다. 지난 1월, 10회차 촬영으로 끝냈다. 소규모 제작 영화 다보니 보통의 영화보다 호흡을 맞출 시간이 별로 없었다. 각자의 인물을 표현하는 게 주였다. 그래도 "재미있고 편하게 촬영했다"고 좋아했다.

고은아는 '스케치'를 통해 수연이라는 캐릭터로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대변한 듯하다. 태어났을 때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도 영화를 통해 자신감 있게 드러낸다. 신비스러움을 추구해야 할 배우가 모든 걸 보여주는 것 같다. 고은아에게 '너무 많은 걸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하자, 이 여배우 역시 시원하게 답을 내놓는다.

"그동안 저에 대해 숨겼던 것 같아요. 조금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중도 저에 대해 잘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저 자신을 보여주는 게 겁이 나지 않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관심만 받아도 성공한 것으로 생각해요."

고은아는 마지막으로 대중도 노출에만 집중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바랐다. "노출만 언급하고 악용한다고 해도 원망할 수는 없겠죠. 그걸 감안하고 참여한 거니까요. 그래도 베드신만 캡처해 올리는 등 악용하면 화가 날 것 같기는 해요. 대중이 변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거죠. 하지만 관객들이 조금만 현명해졌으면 좋겠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