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민기자의 눈] 앞산지킴이 오용웅 씨

앞산에 태극기 휘날리며 "산불은 내가 지킨다"

성불산(앞산의 본명) 최고봉 서편의 거대한 암석 봉우리에는 과거에 없던 태극기가 펄럭인다. 튼실하게 고정된 국기게양대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깃대와 깃봉이 따듯한 봄 햇살을 받아 유난히 반짝거린다.

매일 산에 올라 태극기를 게양하고 걷는 사람은 대구시 중구 중앙로길(남산동)에 사는 오용웅(74) 씨.

경남 거창군 마리면 위천이 고향인 오 씨는 "저는 아내에게 50세가 되면 무조건 일손을 놓고 쉬면서 일생을 보내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그걸 시행하고 있지요. 그 때문에 별다른 일 없이 쉬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왔는데…"라며 말을 줄이더니 "사실상 놀고먹는 인생살이도 쉬운 게 아니더군요. 그래서 택한 곳이 이곳 앞산입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올라와서 오후 해질 무렵 하산하곤 했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오르내리던 이곳에서 2012년쯤 하산할 무렵 주변의 바위틈에 촛불을 켜 놓은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촛불기도를 하고 그대로 켜놓은 촛불이었다"라며 "만약 그걸 보지 못했다면 산불이 발생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런 행위를 예방하려면 뭔가 눈에 띄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산꼭대기에 태극기를 설치하기로 마음먹었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깃대의 길이가 6m여서 산꼭대기까지 운반하는데 여간 어려움이 많은 게 아닙디다. 등산로는 꼬불꼬불한 오르막이고, 거기서 자라는 나무가 부딪쳐 이리저리 피해가며 오르자니 무척 힘들었어요"라며 "그런데 내 돈 30만원을 들여서 어렵게 설치해 놓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태극기를 매달고 난 다음 날 해괴한 일을 당해 무척 당황했지요"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누군가 태극기를 갈기갈기 찢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어떤 나쁜 세력이 있지 않나 별의별 생각을 다했지 뭡니까. 그때마다 태극기를 새로 구입해서 달았는데 이제는 해코지하지 않아 마음이 놓이네요"라며 대화 도중에도 당시를 회상하며 여러 번 힘주어 목청을 높였다.

오 씨는 오랜 세월 이곳 정상에 올라서 그런지 매우 건강함은 물론 나이에 걸맞지 않게 10여 년은 더 젊어 보이는 동안이었다. 남다른 좋은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의 모습 또한 더욱 흐뭇해 보였다.

글 사진 권영시 시민기자 kwonysi@hanmail.net

멘토 우문기 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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