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푼 한시] 낙조(落照) / 기은'어사 박문수

나루터 묻는 길손 말채찍이 급하고(2)

어사 박문수가 몸으로 '의'(義)를 중시했다면, 허균은 '홍길동전'이라는 소설로 의를 중시했다. 면암이 민의 주도로 의를 중시했다면, 어사는 관의 주도로 의를 중시했다. 어사로 활동했을 때도 그랬지만 조정에 들어가 국사를 논의할 때도 그는 의를 중시했다. 시문도 역시 명문이다. 소나무 그림자는 짧고 아내의 쪽빛 그림자는 나지막하며, 고목도 늘 푸른 연기에 스며 있을 때 초동의 풀피리를 상상해서 읊었던 율시 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놓아서 먹여 기른 풀밭 소 긴 그림자

망부대 위 아내의 쪽 나지막한 그림자는

고목의 푸른 연기에 서려 초동피리 환영쿠나.

放牧園中牛帶影 望夫臺上妾低鬟

방목원중우대영 망부대상첩저환

蒼煙古木溪南路 短髮樵童弄笛還

창연고목계남로 단발초동롱적환

【한자와 어구】

放牧: 방목, 놓아먹임. 園中: 정원 가운데, 풀밭. 牛帶影: 소 그림자가 길다. 望夫臺: 망부대. 上: 위에. 妾低鬟: 아내의 쪽 그림자.// 蒼煙: 푸른 연기. 古木: 고목. 溪: 시내. 개울. 南路: 남쪽길. 短髮: 더벅머리. 樵: 땔나무. 童: 아이. 弄: 재미있게 놀다. 笛還: 피리를 불며 돌아오다.

'나루터 묻는 길손 말채찍이 급하고'(落照)로 번역해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다. 정치적으로 소론에 속했으며, 영조 대의 탕평책이 시행될 때 명문벌열 중심의 인사 정책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고, '사색'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의 '실'을 강조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놓아먹인 풀밭에 소 그림자가 길고/ 망부대 위엔 아내의 쪽 그림자가 나지막하구나// 개울 남쪽길 고목은 푸른 연기가 서려 있고/ 더벅머리 초동이 피리를 불며 돌아오고 있구나'라는 시상이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지는 해가 푸른 산에 걸려 붉은빛을 토하고/ 찬 하늘에 까마귀는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 나루터를 묻는 길손은 말채찍이 급하고/ 절로 돌아가는 스님도 지팡이가 바쁘구나'라고 쏟아냈다. 위 과체시를 심사한 심사위원은 귀신이 쓴 것이지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시인은 해가 넘어가니 풀을 뜯고 있는 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고 망부대에서 시인을 기다리는 아내의 그림자가 나지막하다고 느꼈다. 여기까지는 귀신이 원수를 갚아 달라고 일러준 답안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의 입을 빌려 화자는 개울가에서 한 세월을 다 보낸 고목이 젊었을 때의 기상을 품고 푸른 연기가 모락모락 난다고 상상했다. 화자 자신을 목동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시심을 끝구에 일으키면서 맺는다. 풀피리를 불면서 돌아오는 더벅머리 초동의 낭만적인 표현은 낙조의 풍경을 한 폭에 담았다.

박문수(1691~1756)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정치가다. 1723년(경종 3년) 문과에 급제해 사관이 됐다. 이듬해 설서(說書)'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년(영조 즉위년)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됐다.

1741년(영조 17년) 어영대장을 거쳐 함경도 진휼사로 나가 경상도의 곡식 1만 섬을 실어 와서 기민(飢民)을 구제해 송덕비가 세워졌다. 다음해 병조 판서, 1743년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이듬해 황해도 수군절도사로 좌천됐다. 1749년 호조판서가 돼 양역의 폐해를 논하다 충주 목사로 다시 좌천됐다. 그 후 영남 균세사(均稅使)를 거쳐 판의금부사'세손사부를 지내고 1752년 왕세손인 의소 세손이 죽자 약방제조로 책임을 추궁받아 제주도에 안치됐다. 이듬해 풀려나와 우참찬에 올랐다.

어사 박문수를 주제로 한 드라마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한중록'에서 배우 변희봉이, 2002년에는 MBC 드라마 '어사 박문수'에서 배우 유준상이 박문수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장희구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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