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가면 꼭 맛보고 싶은 빵이 있었다. '튀김소보로'. 대전역사에 있는 빵가게 앞에는 늘 이 튀김소보로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 풍경을 볼 수 있다. 기차시간이 급해 빵을 사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다음에는 꼭 사먹어야지' 하고 다짐하기를 여러 번. 마침내 은행동 본점에 가서야 빵을 살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도 한참 동안 줄을 선 끝에야 가능했다.
연 매출 270억원. 직원 수 280명. 대전지역 대학생들이 꼽은 취직하고 싶은 기업 순위 3위.
대전의 '동네빵집' 성심당 이야기다. 임영진(61) 로쏘㈜ 성심당 대표는 동네빵집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낸 2대 빵집사장이다. 1956년 선친이 연 대전역 앞 찐방집으로 시작, 58년간 대전 시민의 사랑을 받으면서 중견기업 수준으로 동네빵집을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성심당은 2011년 세계적인 맛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 그린'에 국내 빵집으로는 처음으로 등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는 빵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한다.
찐빵집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날 팔다 남은 찐빵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던 선친의 나눔 철학이 2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다른 빵집에서는 다음 날 팔 수도 있는 빵이지만 성심당은 팔고 남은 빵을 대전역 노숙자와 사회복지시설에 나눠주고 있다. 팔고 남은 빵이 기부하기로 약속한 수량에 못미칠 때는 급히 만들거나 떡을 사서 보내기도 한다. 매년 수억원을 기부하고 아프리카에도 사랑을 보낸다.
"원래 빵맛은 손맛이다. 그래서 공장에서 만드는 대기업 빵집이 동네빵집보다 더 잘 되지 않아야 하는데 동네빵집이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하다보니 대기업 빵집에 밀렸다. 기계로 만든 빵과 손으로 빚어 만든 빵은 다르다. 기계는 손맛에 가깝게 하려고 한 것으로, 대량생산에 좋은 것이지만 품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프랜차이즈 빵집은 수송하고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즉석에서 구워내는 동네빵집 빵맛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동네빵집은 좋은 기술을 갖고서도 공정을 잘 지키지 않고 비위생적이고 인테리어도 좋지 않고 불친절하다 보니 고객이 찾지 않게 된 것이다. 반면에 대기업 빵집은 깨끗하고 인테리어도 좋은데다 카드 포인트제까지 해주니까 고객이 몰렸다. 영세해서 못한다는 것을 고객이 이해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동네빵집의)그런 결점들을 일찍부터 알고 대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서울의 유명 대형빵집인 '뉴욕제과'가 1980년대 초반 지방 1호점으로 대전에 진출, '골목대장'을 잡겠다며 성심당 바로 옆에 지점을 냈다가 참패해 철수한 적도 있다.
"그때까지는 (제빵)기술에서도 서울과 편차도 있었고 서울 빵집이 온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결과는 우리가 이겼다. 우리 빵의 신선도가 서울에서 공수한 빵을 이긴 것이다. 그때 알았다. 금방 만드는 빵이 가장 맛있는 빵이라는 것을…."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하던 그가 직접 빵을 만들게 된 계기는 제빵사들의 파업이었다. 일손이 부족해지자 대학을 다니던 그가 직접 빵도 만들고 케이크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빵집사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도 빵보다는 밥을 더 좋아해요. 재미로 빵을 만들게 된 게 아니라 사실 가족들이 모두 함께하는 생계형 빵집이었다. 누나들이 졸업하고 2, 3년씩 가게를 보다가 결혼하면서 그만두게 되자 장남으로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빵집을 하면서는 제가 젊었으니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사회변화에 맞춰서 잘 따라간 것이 오늘의 '성심당'이다."
성심당은 수시로 직원들을 대상으로 빵만들기 경연대회를 열어 창의성이 있는 신제품을 채택, 시상하기도 하고 진급시키기도 한다. 성심당에서 일하던 직원들 중 이미 많은 수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 빵집을 열어 제2,제3의 성심당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원래 빵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내건 빵집을 내고 싶어한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 빠리바게뜨와 뚜레주르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성공하면서 동네빵집은 무조건 죽는 것으로 인식됐다. 10년간 기술을 익혀봤자 소용이 없어지게 되면서 희망이 없어졌다. 그러던 차에 2년 전부터 동네빵집이다, 골목상권이다 해서 언론에서 다뤄주고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해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면서 동네빵집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우리는 빵을 팔지만 세상을 바꾸는 큰일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빵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경도 생각하고 법도 지키고 세금도 투명하게 내고 이웃사랑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심당을 따라하는 회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가 밝아진다는 주장이다.
"성심당 출신이 똑같이 하더라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빵으로 세상을 즐겁게 하려고 해야지 손님에게 빼앗으려고 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성심당의 (빵을 만드는)레시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심당의 마음을 갖고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도 성심당을 따라하는 곳이 생겼다고 한다."
-성심당이 지금처럼 성장하게 된 나름의 비결은.
"저희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왔다. 동네빵집의 장점을 살리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시민들이 인정해 준 것이다. 손맛을 살리는 공정을 제대로 하고 늘 신선한 빵을 만들어 팔았다. 서울에서라면 다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늘 시식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 여유와 촌스러움이 있을 정도로 푸짐하다. 그래서 학생들이 와서 시식용 빵으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 그것이 학생들의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그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에 진출해 공짜로 먹은 것을 생각하지 않겠나."
-이 정도 규모로 성장했으면 대전에는 물론 전국에 지점을 낼 수도 있었다.
"주변에서 많이들 이야기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지점)하나 내줘, 먹고살게' 하면서 말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도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과 똑같이 되는 거다. 규모가 커질 뿐만 아니라 성심당이 갖고 있는 '가치'를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만들어서 바로 파는 매력도 없어진다. 여러 체인점에 배송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을 견뎌야 하니까 첨가제를 넣을 수밖에 없고…. 순수한 맛이 없어지게 된다.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는 본점 외에 롯데백화점 대전점하고 대전역 등 세 곳이다.
외부에서 자꾸 그런 요청을 하면 저는 '천안 호도과자가 지금은 많이 팔릴 지는 몰라도 그게 천안에만 있다면 가치는 더 있을 것 아니냐. 우리는 그런 가치를 지키고 싶다'고 설명을 하면 수긍한다. "
-성심당이 지역 선호 기업 3위에 오른 것은 대단하다.
"대학생들에게 그런 이미지로 비친 것은 고마운 일이다. 우리 목표는 그런 이미지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지역 출신 졸업생들을 많이 채용하고 초봉도 높여주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현실화하고 있다. 올해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부장도 있다.
한때 화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무허가 건물로 철거 위기까지 간 적도 있지만 그런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문을 닫지 않고 오래 한 가치를 인정받아서 다행스럽다. 생업이지만, 빵집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고, '빵은 사랑할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이 있어서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
-선친 때부터 남은 빵을 기부해오고 있다.
"아버지가 하시던 것을 물려받은 것 뿐이다. 아버지는 신앙심이 깊었다. 그것 때문에 1'4 후퇴때 극적으로 피란을 나올 수 있었다.
고향에서 못 나올 수 있었는데 말이 안 통하는 미군에게 '묵주'를 보여주고서야 우리 식구들만 기적적으로 마지막 배를 탈 수 있었다. (선친은 1950년 1'4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매러디스 빅토리아호를 타고 거제도로 피란 왔다) 아버지는 그 때 결심하셨다고 했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앞으로는 남을 위해 살겠다고. 그것을 그대로 지킨 것이다. 아버지는 이웃에 굶는 사람을 보면 어머니가 찐빵을 만들려고 밀가루 살 돈을 남겨둔 것도 가지고 가서 도와주기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신세진 사람들이 좁은 대전에서 소문을 내줘서 우리 빵집도 저절로 잘됐다."
-기부하고 사랑하는 철학이 몸에 밴 것 같다. 인상이 참 좋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돈을 벌어서 남에게 봉사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에너지가 식지 않는다. 신앙적으로도 사랑해야 하니까 사랑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강요로 새벽미사에 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빵집을 하는 것도 사랑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버지 때부터 이어서 해오고 있지만 이제 저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가장 가치있게 생각한다. 선친께서도 늘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더 받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성심당 외에서는 빵과 케이크를 각각 다른 매장에서 팔고 있다.
"저희가 빵집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성공의 롤모델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모델 말이다. 빵집에서 빵과 케이크를 함께 전시해 팔고 있는데 우리는 빵과 케이크를 분리했다. 그게 원칙이다. 빵과 케이크는 제조기술도 완전히 다르다. 미리 만들어 놓으면 건조해지고 신선도가 떨어진다. 케이크를 전문화해야 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이다. 이제 그런 식으로 빵집 문화가 바뀌고 있다.
로쏘(rosso)는 이탈리아어로 빨간이라는 뜻이다. '로쏘㈜ 성심당'은 돈많이 버는 것이 아닌 좋은 경제생활을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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