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책으로 고대부터 송나라 시기까지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역사 독본이다. 이전에 나온 '사기'와 '한서'를 비롯해 17사(史)에 송나라 역사 일부를 넣어 18사로 하고,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편년체로 요약했다. 초학자들이 장구한 중국 역사에 대한 기초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엮었다. 모두 2권이다. 원래 이름은 '고금역대십팔사략'이다.
저자 증선지(曾先之)는 송 말기에서 원나라 초에 걸쳐 살았던 사람으로 송나라에서 벼슬하다가 송이 망하자 재야 학자로 전통문화를 지키며 교육에 종사했다. 과거시험이 있던 시절에는 '사서'(四書)와 같은 경전이 중요시됐으나, 원나라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자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역사서가 중시됐다. 그러나 역대 역사 기록이 너무 많아 교육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 책을 펴낸 것 같다. 십팔사략은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를 생생하게 기록해 초학자에게 역사와 전통에 대해 흥미를 일으키도록 했고, 고사나 명언도 많이 실어 재미를 더했다.
이 책은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재상 이사(李斯)가 상소하기를 "학자들이 '오늘'을 표준 삼지 않고, '과거'를 들어 오늘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학문만 고집하고, 길거리에서 논쟁하기도 합니다. 무뢰배입니다. 진 제국 이외의 기록과 제자백가의 저작은 불태워버리고, 관리가 법령을 가르쳐줘야 합니다"라고 했다. 또 후생(侯生)과 노생(盧生)이라는 방사(方士'신선의 술법을 부리는 사람)가 "황제가 나쁘니 선약(仙藥)이 발견되지 않는다" 고 하고 도망을 치자 황제는 노발대발해 학자들을 조사했고, 500여 명을 생매장했다. 이런 사실이 후세에 분서갱유라고 기록돼 전해졌다.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이 있다. 학문을 왜곡해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이다. 한 무제는 신분과 계급을 묻지 않고 재능 있는 인재를 발탁했는데, 이때 공손홍(公孫弘)이 선발됐다. 그 무렵 제 나라 출신 원고(轅固)가 늦은 나이에 현량과(賢良科)에 합격해 조정에 초빙됐다. 원고와 공손홍은 동료였지만 조정에서 만나면 공손홍이 원고의 눈길을 피해버렸다. 어느 날 원고는 공손홍을 붙잡고 "올바른 학문을 익히고 나서 말을 하는 게 좋소. 학문을 왜곡해 세상에 아첨해서는 안 되오"라고 충고했다.
당 나라 재상 이임보(李林甫)는 현종의 측근에게 아부하고 늘 현종의 눈에 들도록 해 총애를 받았다. 이를 이용해 왕의 귀와 눈을 막아버렸다. 나아가 어진 신하를 미워하고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을 배척했다. 이러한 그의 음험한 성격에 대해 사람들은 "입에서 나오는 말은 꿀처럼 달지만 뱃속에 든 칼은 정말 무섭구나"라고 했다. 바로 '구밀복검'(口蜜腹劍)이다.
이동희 계명대 윤리학과 교수 dhl33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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