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구시의 고위직 공무원으로 있다가 퇴임한 분을 만났다. 자연스레 올 6월의 대구시장 선거가 화제였다. 그분 왈(曰), "대구는 죽은 땅이다. 여당도 야당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대구를 산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살 수 있어야 한다." 오랜 시정(市政)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말은 울림이 있었다. 대구는 왜 죽은 땅이 되어 버렸을까? 그의 말은 계속된다. "대구는 보수 정당(새누리당)이 찍어서 내려 보내면 모든 게 끝이다. 그다음은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항상 관료 출신만 찍어서 보낸다. 반항(?)도 않고 순종적이며, 세력도 키우지 않고,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의 역동성과 자생력이 사라졌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매년 1만 명 가까운 청년들이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고, 남아 있는 청년들은 배우자 찾기도 힘들다고 하는 것이 대구의 현실이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지금까지 대구 시장은 모두 고위 관료 출신이었다. 대구는 사실상 임명제 시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역대 대구 시장 선거 투표율이 평균 50%를 밑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대구 시민들에게 시장 선거는 중앙의 임명을 추인하는 통과의례였을 뿐, 선거가 아니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온 이유이다. 게다가 의회도 모두 한집안이니 시정(市政)에 전혀 긴장감이 없다. 경상북도도 마찬가지다.
대구 시장이 관료 출신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시민들이 그들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왜 그럴까. 선거 때마다 '중앙 지원론'이 등장한다. 중앙의 지원을 받아서 대구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에 두터운 인맥이 있을 것 같은 고위 관료 출신이 시장이어야 한다는 논리다. 과거 대구는 집권자를 여럿 배출하면서 중앙과의 두터운 관계로 덕을 본 측면도 있어 이런 논리가 먹힌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경험칙에서 얻은 잘못된 허상이다.
'한비자'에 수주대토(守株待兎) 이야기가 나온다. 송나라 때,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느닷없이 토끼 한 마리가 달려와 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 횡재를 한 농부는 밭 갈기를 그만두고 매일 나무를 쳐다보고 토끼가 달려와 머리를 처박기만 기다렸다. 토끼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 사이 밭에는 잡초가 무성해지고, 못 쓸 땅이 되어 버렸다. 지나간 행운이 다시 오기를 바라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탓하는 한비자의 가르침이다. 대구는 지금도 죽은 땅 위에서 오지 않을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가?
이번 선거부터 달라지면 좋겠다. 위기의 대구를 살아있는 땅으로 만드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곡괭이를 들고 잡초 무성한 죽은 밭을 일구어야 한다.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나무를 지켜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뛰어다니는 길목을 찾아 덫을 놓아야 한다. 밭을 일구고 토끼몰이를 할 수 있는 역동성을 가진 시장이 있어야 한다. 순종적인 아이는 돌아보지 않는다. 우는 아이에게 젖 주고, 짖는 개를 쳐다본다. 중앙의 시혜에 목을 매지 말고 지역의 권리를 외치는 시장이어야 한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해주세요'라고 중앙에 애원하고 선처를 기다리지 말고, 공항을 만들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것을 중앙이 알도록 하는 저항의 몸부림을 보여야 한다. 때로는 머리를 쳐들고 그들을 들이박는 저돌성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중앙의 인맥을 자랑하는 길들여진 관료가 아니라, 중앙의 대척점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시장이 뽑혔으면 좋겠다.
예상과 다르게 관료 출신의 현 시장이 용퇴를 선언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관료 출신 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이별가를 미리 엿듣고 내린 결정은 아닐까. 이번 선거는 다를 것 같다. 새로운 후보들의 면면이 관료 출신이 아닌 사람이 많다. 적어도 관료 출신의 시장이 나올 가능성은 낮아졌다. 이전과 다르게 야당 후보자에게도 여론은 호의적이다. 이런 현상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구의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여기고 싶은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이성환/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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