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바른말 고운말'을 생각하다

1년 전 이 칼럼을 부탁받고 첫 번째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나는 깜빡거리는 커서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거절이란 것을 잘 못하는 나의 성격을 탓해야만 했다. '우리말 이야기'라고 하면 당연히 독자들은 TV에서 하는 '바른말 고운말'과 같은 표준어 규정에 대한 것을 기대할 텐데, 문학 전공자인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또 표준어 규정에 대한 책들이나 신문 칼럼, 방송 프로그램이 많은데, 내가 굳이 영혼 없는 이야기를 더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글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다 남들이 이미 한 뻔한 이야기는 굳이 쓸 필요가 없다는 것과 자기 스스로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써서는 안 된다는 글쓰기의 기본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표준어 규정에 맞는 말을 '바른말 고운말'이라고 하는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규정에 맞게 쓰려면 '바른말'은 한 단어이므로 붙여 쓰고, '고운말'은 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고운 말'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만큼 규정이 어려운 점도 있다.) 말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 간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도 말을 통해서이고, 사이가 틀어지고 원수가 되는 것도 말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기준에서 본다면 규정에 맞는 말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라면 바르지도 않고, 곱지도 않은 말이다. 대신 규정에는 조금 어긋난다 하더라도 시골 아지매들의 구수한 사투리처럼 상황에 알맞고 재치 있는 말이라면 바른말이 되고, 남들을 기분 좋게 하는 말이라면 고운말이 된다.

첫 번째 글은 바로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이런 생각에 동의해 주시고, 특히 국립국어원의 입장과는 다른 의견, 이를테면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자장면' '저우룬파'와 같은 말을 버리고 '짜장면' '주윤발'로 써야 한다는 글에 더 크게 격려를 해 주셨기 때문에 1년 동안 즐겁게 글을 써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가정과 본업에 약간은 소홀함이 있었지만 별로 티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아내와 동료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만약 내가 1년을 돌아보며 앞에 했던 이야기와 달리 "지금도 대중들의 국어 사용 실태를 보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라고 한다면 아마 앞 문단까지 기분 좋게 글을 읽었던 사람들은 매우 불편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마치 젊은 선생님들끼리 노는 자리에 교장 선생님이 합석해서 자신의 교육 경력과 교육 철학을 설파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이 '입바른' 소리는 될 수 있어도 '바른' 말이 될 수 없는 것은 삶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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