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대한자강회로 계몽활동 나선 윤효정

"무릇 우리나라의 독립은 오직 자강의 여하에 있을 뿐이다. 우리 대한은 지금까지 자강의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민은 우매해졌고 자연히 국력은 쇠퇴해졌다. 드디어 오늘날 외국 사람의 보호를 받는 간극(艱棘)한 상황에 이르렀으니 이는 모두 자강의 길에 뜻을 두지 않아서이다."

1906년 오늘 윤효정(尹孝定'1858~1939)은 장지연(張志淵) 등과 함께 민중계몽 단체인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만들었다. 을사보호조약 강제체결(1905년) 등 조선 패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자 국민교육을 통한 국력 배양과 독립 기반 강화 활동을 위해서였다. 전국 25곳에 지회를 두었던 자강회는 1905년 5월 구성된 기존 헌정연구회를 확대 개편한 것이었다. 이들은 자강회 모임 취지서를 밝히고 월보(月報)를 제작, 팔기도 했다. 월보엔 '대한자강회 월보라는 책은 애국사상이 있으신 지사(志士)는 부득불 열람할 일'이란 광고 문구를 새겨 동참을 촉구했다. 의무교육 실시, 조혼금지, 단발(斷髮) 실천, 황무지 개척 등에 대한 계몽운동을 폈다.

구한말 문신 관리였던 윤효정은 1898년 독립협회 간부로 활동도 했고, 고종 양위 음모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했다. 이때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망명 중이던 우범선(우장춘 박사 아버지)과 교제했는데, 우범선을 명성황후 시해관련자로 알고 뒷날 사람(고영근)을 시켜 살해토록 했다고 한다. '풍운한말비사'라는 글을 언론에 연재하기도 했다.

정인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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