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권모(43) 씨가 '지금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을 처음 느낀 건 6개월 전이다. 느긋하게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 여름날 오후,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호흡은 가빠졌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권 씨의 뇌리를 스친 불길한 예감 '심장마비'. 억지로 몸을 일으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벌렁거리던 심장은 이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이후 비슷한 증상이 세 번이나 반복됐다. 권 씨는 심장초음파 등 각종 검사를 받았지만 전혀 이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신경정신과.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전형적인 '공황장애'였다. 권 씨는 술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며 6개월가량 약을 복용한 끝에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황장애는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럽다. 발작이 오면 죽음을 목전에 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신체적으로는 전혀 이상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병명을 알기도 쉽지 않다.
◆이유없이 찾아오는 공포감
공황장애는 뚜렷한 이유 없이 극도의 공포감과 불안감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병이다. 어지럼증이나 가슴 통증, 호흡 곤란이 찾아오고 '이러다가 숨이 막혀 죽지 않을까' '심장 마비로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발작 증상은 20~30분가량 계속된다.
이런 발작을 겪고 나면 다시 공황 상태가 찾아올까 봐 계속 불안해진다. 항상 불안 속에 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을 받는다. 특히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 중 30~50%는 '광장공포증'을 함께 겪는다. 공황발작이 왔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하고 홀로 남게 된다는 공포감에 공공장소를 피하는 증상이다. 광장공포증을 앓게 되면 시장이나 백화점 등 인파가 많은 곳이나 운전, 장거리 여행 등을 피하게 된다. 심한 경우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집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공황장애를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극심한 합병증을 겪게 된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광장공포증으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 어렵게 된다. 가족들에게 의존하다 보니 좌절과 실의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신체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병을 이해하지 못한 가족들은 환자의 정신적'성격적 나약함을 비난하고, 결국 가족들과 불화를 겪게 된다. 공포와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술이나 약물에 의존해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뇌가 일으키는 이상 반응
공황장애는 뇌 속의 공포 회로가 극도로 민감해지면서 발생한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증상을 겪기 전에 대개 과음이나 육체적 피로를 겪거나, 직장이나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한 경우가 많다.
공황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생물학적 원인과 심리'사회학적 원인이 동시에 작용한다. 생물학적 원인은 뇌 속에서 생각이나 감정, 행동에 대한 정보를 상호교환하는 신경전달물질 중에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가바 등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경우다. 유전적인 요인이 강한 점도 특징이다. 심리사회적 원인으로는 스트레스와 성격이 작용한다. 특히 가슴 두근거림이나 몸의 떨림, 초조함 등의 증세와 함께 겁이 많을수록 공황장애가 잘 생길 수 있다.
공황장애는 뒤늦게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 증상 때문에 심장내과나 소화기내과, 신경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등을 먼저 찾기 때문이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이나 두근거림, 어지럼증, 두통에 시달린다면 공황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 평소에도 발작 증세에 대한 불안감을 늘 갖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공황발작은 다른 질환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신체검사와 심전도, 갑상선기능 검사, 뇌 촬영 등을 해보는 것이 좋다. 갑상선 기능항진증이나 심장 부정맥, 신장 옆 부신에 종양이 생기는 갈색세포종, 뇌종양 등이 원인일 수 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병행해야
공황장애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게 효과가 높다. 프로작이나 세로작, 졸로푸트 등 항우울제 등이 효과가 있다.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며칠 내로 공황 증상이 사라진다. 하지만 증상이 없어지더라도 재발을 막기 위해 6개월~1년가량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치료인 인지행동치료를 받으면 더욱 좋다. 심리치료는 공황발작이 왔을 때 "죽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두려움을 떨쳐내는 게 우선이다. 또 호흡훈련과 근육이완훈련을 통해 과호흡과 긴장을 푸는 연습을 한다. 또 공황발작으로 인해 나타나는 어지러움이나 가슴 두근거림, 답답함 등의 신체감각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한다.
공황과 관련된 문제들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발작의 빈도나 증세, 불안감 등을 관찰해 기록표에 적고 어떤 상황에서 공황발작이 생기는지 전개과정을 기록해 원인을 찾는 것이다. 공황장애 환자들이 함께 토론하고 배우며 자신의 반응을 변화시키는 방법도 효과가 있다. 서로 위로하고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며 스스로의 병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공황장애를 미리 막으려면 신체적'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긍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생소한 환경에서 행동이 위축되거나 수줍음이 많고 무서움을 잘 타는 아이들은 공황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행동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아이는 불안장애로 발전할 수 있고, 성장기 불안장애는 성인이 됐을 때 공황장애로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도움말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정범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