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소녀의 일기

1960년 3'15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하던 이승만 정부를 향한 청년 학생의 분노는 4'19 혁명으로 타올랐다. 당시 18세의 나이로 혁명에 참가했던 소녀가 쓴 일기 내용이 '4'19 혁명과 소녀의 일기'란 책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꿈 많은 여고 2학년이 교복을 입고 거리로 나서 민주화의 물결에 동참한 생생한 경험담이다. 맨주먹으로 독재에 항거하던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던 처절했던 혁명의 얘기는 오늘의 소녀들에게 역사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바그다드 소녀 투라의 일기'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가족과 함께 바그다드에 살던 소녀가 쓴 일기이다. 소녀의 눈에 비친 전쟁의 충격과 공포 그리고 피란, 친구의 죽음과 내일의 희망 등 전투지역의 긴박한 실상을 꼼꼼하게 담고 있다. 소녀의 일기는 영국 BBC TV의 다큐멘터리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친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10대 소녀의 일기가 공개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소녀가 느낀 두려움과 자괴감을 고스란히 적은 일기장은 가정폭력 전과가 있는 한 남성의 끔찍한 범행일지나 다름없었다.

청순한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소녀가 적은 혁명과 전쟁, 폭력의 체험담은 그래서 더 적나라하고 세인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전하기 마련이다. 그 소녀의 일기조차 능멸하는 족속들이 있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의 극우세력이다.

핵 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네덜란드를 방문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의 집'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안네의 집'이 어떤 곳인가.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의 광기와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며 일기를 썼고, 기어이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숨진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아베 총리가 누구인가. 침략전쟁과 대학살을 자행한 일본 제국주의의 따라지가 아닌가. 게다가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종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자칭 군국주의자가 그곳을 방문해 '역사적 사실과 세계평화'를 운운했다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노릇이다. 아무리 혼네(本音,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 겉모습)가 따로인 왜족(倭族)이라고 하지만,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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