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0대 그룹의 상장사는 금융사를 제외하고 모두 171개이다. 지난 연말 집계된 3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158조원이다. 삼성그룹이 60조원을 동개놓았고, 현대자동차 그룹은 약 40조원, SK그룹은 약 11조원을 갖고 있다. 기업 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사이트 CEO 스코어가 낸 자료이다. 삼성'현대'SK 등 톱3의 현금 보유액은 약 111조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불안에 대비하여 즉시 쓸 수 있는 실탄, 즉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스마트폰 사업이 성장 한계에 온 게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할 대체제나 신수종 사업 모색도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타도 삼성을 부르짖는 기업들은 세계 도처에 늘려 있지만, 짝퉁 하이폰으로 아이폰을 따라잡은 중국의 샤오미(小米) 그룹은 모조 삼송폰으로 삼성 스마트폰을 무섭게 따라오고 있다.
일명 '좁쌀 그룹'인 샤오미의 40대 레이쥔(雷軍) 회장은 잡스 아바타이다.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도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 운동화를 신고 잡스 흉내를 낸다. 잡스에 빙의된 상태로 아이폰과 비슷한 성능에 값은 훨씬 싼 저가 하이폰으로 돌풍을 일으켜 애플을 간단히 제압했다. 이제는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미래부가 주최한 '2014 창조경제 글로벌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롱테일(longtail) 경제학'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은 "샤오미가 전 세계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가장 잘하는 기업"이라고 꼽았다. 샤오미뿐일까? 글로벌 삼성을 뛰어넘으려는 기업은 도처에 늘려 있다. 일본의 출판교육기업 베네세 그룹은 또 다른 의미에서 삼성을 능가하고 있다.
베네세 그룹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기업의 소명은 사회공헌이라고 믿고 실천해왔다. 이익을 내는 것이 기본인 기업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존경받지는 않는다. 임신에서부터 직장생활을 하기까지 생애 연령별 맞춤형 서비스를 하고 있는 베네세 그룹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대상 고객이 줄어드는 현상을 목격했다. 기업 차원에서 청년과 노년을 같이 지원할 거리를 찾기로 했다. 쉽지 않았다. 이때 일본 남부 세토 내해에 있는 나오시마 섬이 산업화 시기, 해안가에 들어선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청년들이 다 떠나가고 움직이기 어려운 노년층 200여 명만 남아 있는 사실을 알았다.
후쿠다케 회장은 오염으로 죽어가던 나오시마 섬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절반을 샀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변모시켜달라고 주문했다. 안도는 특유의 건축물 스타일을 지양하고, 섬 환경에 맞는 지중미술관을 건립하고, 이우환 미술관을 세웠다. 지중미술관은 출입구를 제외한 모든 시설물이 땅속에 있고, 태양빛이 시시각각 미술관을 달리 보이게끔 설계됐다. 대구시립미술관에서 대박을 터뜨린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점박이 호박은 나오시마 포구를 지키고 있다.
처음 냉랭하던 주민들은 생활예술 프로젝트에 자원봉사로 참여하면서 스스로 섬의 수호천사가 됐다. 파도에 떠내려간 쿠사마의 거대한 호박 꼭지를 어부들이 건져다 주고, 호텔과 미슬관이 함께 있어서 비싼 베네세 하우스가 아닌 싼 숙박시설을 찾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바꾸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들은 영어를 배워 관광객을 안내하고, 주민들은 해 뜨기 전 집 앞을 깨끗하게 비질한다. 매일 가는 목욕탕은 아이러브유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체험장이 되었다.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7대 명소 가운데 하나로 소문나면서 떠났던 지역 청년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섬 주민은 3천300명으로 불었고, 소득은 일본의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다. 버려진 나오시마 섬을 부활시켜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데 베네세 그룹이 투자한 금액은 10억엔, 우리 돈으로 100억 원이 좀 넘는다. 두 배가 들었다고 해도 200억원이다. 베네세 그룹이 투자한 200억 원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나오시마를 예술 천국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톱3 그룹의 현금 자산, 111조 원. 이 가운데 1%, 1조원만 투자해도 한창 일고 있는 문화 융성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이제 전 세계 도시의 목표는 문화융성이다. 예로부터 음주 가무를 즐기고, 유교적 소양이 깊은 대한민국 어느 곳이든 문화 마중물 1조원을 부어 창조경제를 꽃피게 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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