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어(歸漁) 대박'이다.
귀농 열풍과 함께 최근 도시에서 어촌으로 오는 '귀어인'들이 늘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의 귀어인들에 대한 지원도 늘면서 어업인의 길을 택한 사람들은 웬만한 월급쟁이 뺨치는 소득을 올리며 정착에 성공하고 있다. 경북 동해안 바다를 누비는 새내기 어업인들을 만났다.
◆"영덕·울진 앞바다 낚시 포인트 섭렵"…취미가 전업 괸 임창순 씨
구미에서 26년을 살았던 임창순(50) 씨. 지난해 15년 운영하던 낚시점을 접고 울진군 기성면 구산항에 정착해 억대 연소득을 올리고 있다. 동네 어르신들의 어려운 일을 도맡아 도와주면서 벌써 어촌계원이 됐다.
낚시광인 임 씨는 직장을 다니다 취미를 살려 낚시점을 열었던 이력이 말해주듯 낚시에선 거의 프로를 뺨친다. 낚시점을 운영하며 동해안 곳곳으로 낚시 여행을 무수히 다녔다. 그는 이미 예비 어업인이었던 셈이다.
"10여 년 전 부산의 한 해도전문점 앞을 지나다 마주친 동해의 해도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 해도를 모두 구했습니다. 그 속에 낚시 포인트가 숨어 있더군요. 특히 영덕'울진 앞바다 24㎞ 해저에 있는 거대한 바위 '왕돌초'를 확인했습니다. 1m 넘는 방어가 마구 올라오는 곳이었죠. 귀어 계획은 그때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그의 귀어 결단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뜻에 의해 이뤄졌다. 낚시 시즌이 끝나고 뒤늦은 휴가를 다녀오니 낚시점이 몽땅 털려 도저히 거기서는 재기할 수 없을 지경에 빠졌다. 낚시점을 접는 방법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귀어를 결심하고 부인을 설득했다. 경북어업기술센터 영덕지소를 찾아 상담했더니 빵빵한(?) 귀어 지원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착할 곳은 왕돌초가 가장 가까운 울진 구산항으로 택했다.
"지원금으로 낚싯배를 건조했습니다. 이름도 '왕돌의 전설'로 지었습니다. 낚시 예약자들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당뇨 증세도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집사람이 적응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제게 있어 귀어는 대박입니다."
◆"가족과 함께 조업 소득 늘고 마음 편해"…청년 사업가서 귀어 백남일 씨
012년 고향 울진으로 귀어에 성공한 백남일(31)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용산상가에서 컴퓨터 부품업을 하며 2008년 전에는 연 4억~5억원을 벌기도 했던 청년 사장님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포항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 서울로 가서 시작했던 컴퓨터부품 사업. 초기에는 그에게 성공 신화를 꿈꾸게 했다. 하지만 중국산 저가 공세와 과열경쟁'스마트폰 보급이 늘면서 컴퓨터 부품업이 내리막길을 달렸다. 올해는 나아지겠거니 하며 기다린 것이 몇 년. 그러는 동안 모아두었던 사업자금도 바닥이 났다.
"아마 제가 지금 거기 있었으면 부도났을 겁니다. 비슷한 시기에 평생 배를 타시던 아버지도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귀어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어업인 지원금으로 배를 조금 더 큰 배로 바꾸고 아버님과 함께 대게와 오징어 조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서울 생활보다 더 마음도 편하고 소득도 기대 이상입니다. 주거비나 생활비가 덜 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백 씨의 배에는 다른 예비 귀어인 2명이 일하고 있다. 본격적인 귀어에 앞서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 적성도 테스트하는 것이다. 형의 성공적인 귀어를 목격한 백 씨의 동생도 곧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어업에 합류할 예정이다.
"동생이 합류해 가족끼리 조업하면 능률이나 소득도 더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운도 있어야겠지만 결국 바다는 일한 만큼 돌려줍니다. 그러기에 희망이 있는 거죠."
◆"아버지 일 돕다 보니 실업 슬픔 털었어요"…가업 물려받은 박상민 씨
영덕군 영해읍 사진리 박상민(32) 씨는 고향 영덕에서 중학교를 나와 부산의 기계공고로 진학했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는 박 씨는 고교 졸업 후 삼성전기에 입사했다. 군대를 다녀와 복직한 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일본계 부품회사로 이직했다. 이때만 해도 박 씨는 귀향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바리스타 수업을 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커피전문점 창업을 준비하던 지난 2011년 당시 엄청난 풍어를 기록했습니다. 정치망 어업을 하시는 아버지께서 일손이 달린다며 영덕으로 잠시 오라고 하시더군요. 아버지를 돕다 보니 어업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영덕은 해양수산과 관련해 어민 지원도 좋은 곳이고, 냉정하게 따져봐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분야를 택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지난 2012년 영덕으로 온 그는 당시 사귀고 있던 지금의 부인에게도 귀어 사실을 알렸다. 구체적인 계획도 털어놨다. 실업자 상태였던 박 씨의 자신감 있는 미래 설계에 애인은 감동했고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박 씨는 지난 2012년 어민후계자 신청을 하러 어업기술센터에 들렀다가 귀어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2년 정도 지나면서 자신 이름의 수산물 가공공장도 운영하고 있다. 또 올해 5월 박 씨의 2세가 태어나는 경사를 앞두고 있다.
"부산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도 저의 귀어를 보고 이것저것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부산에 사는 형님도 귀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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