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인정을 사용하는 요즘은 교과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던 1970, 80년대의 한국사 교과서에 '기자조선'(箕子朝鮮)이 실려 있었다. 기자는 은나라 말기 폭군 주왕(紂王)의 숙부로 곧은 말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으나, 은을 멸망시킨 주 무왕이 석방한 사람이다. 이후 기자는 고조선 쪽으로 넘어와 기자조선을 세웠고, 뒤에 위만조선에 망했다는 이야기다. 기자조선은 오랫동안 실재한 것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도 기자는 실재 인물이고, 현인이었음은 여러 곳에서 전한다. 한비자의 유로(喩老)편에 전하는 이야기다.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자 기자는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을 예감하고 두려워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상아 젓가락은 질그릇에 얹어 놓을 수 없어 물소 뿔이나 옥으로 만든 그릇을 써야 한다. 상아 젓가락과 옥그릇이라면 국을 콩잎이 아닌 털이 긴 소나 코끼리, 어린 표범 같은 귀한 고기로 끓여야 한다. 이런 고기를 먹으려면 해진 옷이나 모옥(茅屋, 띠로 이은 보잘것 없는 집)이 아닌 비단 옷과 고대광실이 필요하다. 그 마지막이 두렵다. 그래서 그 시작이 불안하다."
이 일이 있은 5년 뒤, 주왕은 주지육림, 포락지형 등 불명예스러운 고사를 남긴 폭군의 대명사가 됐고, 은나라는 멸망했다. 이를 두고 한비자는 '작은 것을 꿰뚫어보는 것을 가리켜 밝음이라 한다(見小曰明)'는 노자의 도덕경을 인용해 상아 젓가락을 보고 천하의 화근을 미리 짐작했다며 기자의 밝음을 칭송했다.
6'4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대구'경북에서의 새누리당 공천방식이 관심이다. 대부분 기초자치단체장 공천은 중앙당의 방침대로 대의원, 당원, 주민선거인단 투표, 여론조사를 섞어 결정한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상주시의 김종태 국회의원이 100% 여론조사를 통한 공천을 선언한 뒤, 울진과 영양군에서도 이를 따르기로 했다.
어느 방식이든 장단점이 있기는 마련이다. 100% 여론조사도 지명도가 높은 현역에게 유리한 단점이 있지만, 당과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공천 기득권을 내려놓는 방식이라는 점만으로도 신선하다. 그곳 주민이라면 이번에 출마를 밝힌 후보의 사람 됨됨이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에서 벗어나, 작은 것을 보고 미래를 짐작하는 주민의 밝음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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