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나눠 가진 책임은 가벼워질까

'달리와 라테인의 실험'(1968년). 집단 토론을 한다며 대학생들을 불러 방마다 한 명씩 배치한 뒤 마이크와 헤드폰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한다. 서로 보지는 못하고 대화만 나눈다. 대화 참가자는 2명, 4명, 7명 등으로 다양하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실험조교다. 갑자기 조교가 "머리가 아프다. 쓰러질 것 같다"는 말을 남긴 뒤 조용해진다. 어떻게 됐을까?

대화 참가자가 많을수록 반응 비율은 떨어졌다. 대화 참가자가 2명(한 명이 조교)일 때 85%에 이르던 반응 비율이 7명일 때엔 31%로 떨어졌다. 이들은 "남들이 알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변명했다. 문제를 인식했지만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것을 '책임 분산'이라고 한다.

'로빈과 라테인의 실험'(1969년). 실험을 한다며 대학생들을 불러 대기실에 한 명 또는 여러 명씩 있도록 했다. 그런 뒤 갑자기 문틈으로 연기가 새어 들어온다. '이게 뭘까? 위험한 걸까? 알려야 하나?' 고민하던 학생들은 방을 튀어나온다. 혼자 기다리던 사람들의 75%는 2분 이내에 보고했다. 하지만, 여러 명인 경우, 보고 비율은 13%에 그쳤다. 그것도 6분이나 기다린 뒤에. "남들이 가만히 있어서 나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그릇된 판단으로 아무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을 심리학 용어로 '대중적 무관심'이라고 한다.

2008년 6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한 도시의 외곽 도로. 아버지가 두 살 난 아들을 마구 짓밟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아이에게서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길 가던 낯선 사람과 가족, 친구들은 이런 상황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뒤늦게 신고를 받고 헬기로 출동한 경찰에게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욕을 날렸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다.

2008년 6월 뉴욕 브루클린 킹스카운티 병원에서 에스민 그린(49)이 병원 대기실에 쓰러져 숨진 뒤 한 시간 넘게 방치된 일이 벌어졌다. 그린은 진료를 받으려고 거의 24시간 대기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한 직원은 쓰러져 있는 그린을 발로 툭툭 차기도 했다.

2010년 4월 뉴욕, 휴고 알프레도 테일-약스라는 사람이 소매치기로부터 한 여성을 구하려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약스는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이상 길에 버려져 있었다. 25명 넘게 옆을 지나쳤고, 어떤 사람은 사진까지 찍었다. 하지만, 아무도 신고하거나 돕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대한민국. 2월 17일 오후 9시 5분쯤 체육관 지붕이 갑자기 무너져내려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쳤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다. 동해안 일대에 유례없는 폭설이 내렸다. 체육관이 무너지기 엿새 전 울산에서 공장 지붕이 무너져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체육관과 같은 구조물이다. 폭설은 계속됐다. 리조트 측은 계열사 직원까지 280명을 동원해 도로와 골프장에 쌓인 눈을 싹 치웠다. 리조트 내부 문건에 '누적 적설량 145㎝'라고 기록돼 있었지만 아무도 체육관 지붕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저 눈 때문일까? 누구는 건축허가 서류를 변조해 불법 체육관을 짓도록 했고, 누구는 공사비 95만 원을 아끼려고 강도가 떨어지는 자재를 썼으며, 누구는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는 돈 때문에 안전에 대한 마지막 책임마저 져버렸다. 법을 위반했다며 6명이 구속되고 16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책임은 22명의 몫으로 끝일까? 다른 '방관자'는 없었을까?

6'4 지방선거가 두 달 앞이다. 후보마다 자신이 의원이 되고 단체장이 되면 정말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친다. 좋게 말하면 '꿈도 야무진 것'이고, 심하게 말하자면 '새빨간 거짓말도 유분수'다. 지방자치 20년을 바라본다. 20년 동안 속아서 둔감해졌다.

거짓의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무책임의 눈덩이가 지붕을 박살 내버릴 듯 쌓여가는데도 유권자라는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야. 누군가 책임질 거야'라며 외면한다.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은 1회(1995년) 68.4%를 제외하고는 전부 50% 안팎이었다. '책임 분산', '대중적 무관심' 속에 선거에 대한 '방관자 효과'는 점점 커진다. 하기야 후보 중 누군가는 유권자들이 계속 '무관심한 바보'로 남아주길 간절히 바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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