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기(71) 씨. 그는 가수다. 대한가수협회 회원이면서 앨범도 냈다. 50여 년 노래 인생 중 자신의 노래가 단 두 곡뿐인 아마추어 가수이지만 그는 오늘도 노래를 부른다. 노래하면 죽었던 감정도 살아나는 등 살아 있음을 느낀다. 요즘 그는 많이 아프다. 하지만 그를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언제, 어디든 달려간다.
◆노래는 나의 인생
백 씨는 노래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불렀으니 벌써 50년이 넘었네요. 1집 음반밖에 못 냈지만 행복합니다. 좋아하던 것을 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백 씨는 부모님의 반대와 집안 사정으로 직업 가수가 되지 못했지만 노래를 그만둔 적이 없다. "다른 일 하면서 노래했지만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힘들 때 노래 부르면 다 된 배터리가 충전되는 느낌이랄까요. 허허."
환갑을 훌쩍 넘긴 2009년, 백 씨에게 마침내 앨범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창우 전 성주군수가 작사가로부터 받은 '성주아리랑' 노랫말을 백 씨에게 내밀며 음반 취입을 제의했다. 명품 성주참외를 소재로 쓴 가사였다. 백 씨는 성주아리랑과 물러서고 양보하면 웃음꽃이 핀다는 내용의 노래 '한걸음 물러서 봐' 등을 합쳐 음반을 냈다. 여느 아리랑은 구슬프고 애잔한 풍이지만 성주아리랑은 고고풍의 경쾌한 리듬으로 따라 부르기도 쉬웠다.
백 씨는 감격했다. "집안의 반대, 수십 년 무명 가수생활, 사고, 암투병 등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음반 내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는데. 정말 감격했습니다."
백 씨는 바빠졌다. 경로당이나 군대, 양로원 등 불러주는 곳이 많아졌다. 특히 성주에서 하는 행사 때마다 그는 초청됐다. "나이가 들면서 내 고향 성주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성주아리랑을 낳았다"며 "열심히 성주아리랑을 불렀다"고 했다.
◆'딴따라'라 반대
백 씨의 고향은 경북 성주군 성주읍.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의 별명은 '유성기'. 유성기처럼 틀면 청산유수처럼 노래가 끝도 없이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만큼 노래가 좋았어요." 당시 백 씨가 좋아했던 가수는 나훈아와 남진, 오기택, 남일해, 남상규 등. 특히 오기택을 좋아했다. 모델 가수 신광우 씨는 "백 선생의 목소리는 아름다워요. 미성이에요. 저음에다 부드러워 여성들이 좋아할 목소리입니다."
당연히 가수를 꿈꿨다. 그러나 부모님이 반대했다. "노래하는 사람을 '딴따라'라며 천하게 생각했고, 음악 하면 굶어 죽는다며 반대했어요."
하지만 백 씨는 노래하고 싶었다. 급기야 고교를 졸업한 뒤 일(?)을 저질렀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에 있는 서라벌예대 성악과에 입학한 것이다. "당시에는 실용음악과가 없었어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과를 선택한 거죠. 방법이 없었어요." 백 씨는 소 한 마리를 훔쳐 서울로 줄행랑쳤다. "부모님한테 '돈 벌러 간다'고 속였어요. 반대할 줄 알고 선수를 친 거죠."
소 판 돈으로 등록금과 하숙비를 내고 나니 무일푼. 사촌형과 방을 얻어 자취를 했다. "생활이 안 돼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생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노래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물론 노래는 계속했다. 1970년대 후반쯤 대구 대덕제에 출전해 오기택의 '우중의 연인'을 불러 일등상을 받았다. 연예계 관계자로부터 '가수 되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용기가 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냥 그대로가 좋았다. 낮에 일하면서 출연요청이 들어오면 노래를 불렀다. 물론 봉사나 자선활동은 계속했다. 퇴직 후에도 이런 생활은 계속됐다.
◆노래가 좋아요
1집 출반 이후 몇 년간 성주아리랑을 부르며 행복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5년 전 백 씨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검진을 해보니 신장이 좋지 않았다. 백 씨는 요즘 혈액 투석을 위해 병원을 찾는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병이라니. 충격을 받았어요." 실의에 빠졌다. 온종일 집에만 있었다. 오래 누워 있으니 점점 몸이 쇠약해졌다. "죽는 날만 기다렸어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2년 전 다시 신광우 씨를 만났다. 신 씨는 백 씨에게 "다시 노래하라"고 권했다. 예전에 입던 화려한 무대복을 꺼내 입고 노래를 부르니 힘이 났다. 용기가 생겼다. "다신 못 입을 것 같았던 무대복을 입으니 감개무량하더라고요. 누군가 '즐기라'라는 말이 의미 있게 와닿았어요. 무엇보다 '내가 아직도 필요한 존재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역시 내가 있을 자리는 무대인 것 같아요. 행복합니다."
◆죽는 그날까지 노래할래요
백 씨는 "노래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노래할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죽는 그날까지 노래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어요." 백 씨는 한 가지 꿈이 있다. "'성주는 내고향'이란 노랫말이 있는데, 죽기 전에 음반을 출시하는 것입니다. 수구초심 (首丘初心)이라 할까요. 죽을 때가 되니 더 고향 생각이 나네요. 꼭 이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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