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날리는 오후, 핑크 마티니(Pink Martini)의 'la Soledad'같이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 한다면 나른해진 일상(日常)도 잠시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봄비 내리는 테라스에 앉아 양철지붕을 두들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춘곤증에 스스로 몸을 맡겨 눈을 감아도 상관없다."
'커피명가'는 그렇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누구나 와서 정말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커피 맛이 어쩌고 하지만, 커피는 소재고 사실은 공간이다. 그 공간의 주체인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가진 소명이기도 하다."
커피명가 안명규(50) 대표는 '커피쟁이'다. 칙칙한 다방 외에는 커피 문화라고 이름붙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커피에 인생을 걸었다. 다국적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가 국내에 처음 진출한 1999년보다 9년이나 앞선 1990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커피전문점을 열었다.
그는 '맛있는' 커피는 "한 모금 마셨을 때 달고 숨이 탁 막혀야 한다. 모든 커피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맛있는 커피는 새콤달콤하다.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면 책 한 권을 본 것과 같은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안 대표를 커피의 길로 이끈 것은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 학교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이 내려 준 한잔의 원두커피였다.
"중'고교 시절 누구나 방황하기 마련인데 저는 그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사는지 생각을 많이 했다. 공부하기 싫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 봤는데 사서 선생님이 커피를 갈아서 한잔 주셨다. 그게 굉장한 위로가 됐다. 집에서는 판사가 되라, 이런 이야기만 했지 한 번도 위로를 받지 못했는데…. 사서 선생님은 공부는 왜 하지 않느냐는 말씀도 없이 그냥 커피 한잔만 줬다. 그때 커피를 마시면서 '이게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위안을 준다면, 어쩌면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 더 정직한 것 같아서 선택했다. 커피명가의 '명가'(明家)는 밝을 명(明)자다. 일상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 그냥 커피 한잔 마시고 기분 좋아질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이 커피 한잔 마시며 머물러 있다가 위안을 받는 것이 보람이다."
매일신문사 1층에 위치한 'camp by 커피명가'와 '라핀카'(la finca) 등 커피명가 직영점에서는 매일 아침 출근시각인 8시~8시 30분까지 '행복한 커피'를 1천원에 마실 수 있다. 행복한 커피 판매대금은 전액 커피 산지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된다. 출근시간 행복하게 마시는 한잔의 커피로 누구나 나눔을 실천하는, 모두가 행복한 운동인 셈이다.
"'행복한 커피'를 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좋은 커피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좋은 커피는 '생두'가 힘이다. 커피 산지에 가면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생두를 싸게 살까 하다가, 조금 다니다 보면 농장주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나중에는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른거리게 된다. 흔히들 고기를 많이 잡으려면 낚시법을 가르쳐주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게 아니었다. 어장, 즉 커피 농장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이 사람들이 커피 농사를 잘 짓도록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최소한 인간답게 사는 것이 중요했다. 그곳에 학교를 지어주고 '한글'로 우리가 기증했다는 간판을 붙이고 싶었다. 커피에 관해 1등 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인데, 나는 그들을 이기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나라 커피를 지키는 자존심이다.
회사 수익에서 얼마를 떼 준다는 것은 재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최소한의 땀을 흘려야 하는 '행복한 커피'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른 아침에 신부님들이 오셔서 커피 한잔 마시는 풍경도 좋고, 출근길 막히는 도로에 잠시 정차해 테이크아웃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즐거웠다. 행복한 커피는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하고 우리가 행복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것이다."
안 대표는 이미 5만달러의 기금을 적립해 과테말라와 콜롬비아, 엘살바도르의 커피농장에 학교를 겸한 3곳의 어린이 놀이터를 지었고, 올 연말에는 아프리카 2곳에도 놀이터를 짓기로 했다. 그의 목표는 전 세계에 100개 정도의 놀이터를 짓는 것이다.
-어떻게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커피명가'가 성공할 수 있었나.
"대구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시작할 때는 요즘같지 않아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저놈의 다방…' 하면서 내던져놨기 때문에 가능했다."(웃음)
-일찍부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했다면 더 성공할 수 있었고, 커피 문화 확산에도 도움이 됐지 않을까.
"그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커피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 벌면 다른 데 다니고 커피 문화 확산 등 우리나라 커피 문화라는 파이를 키우는 데 에너지를 다 썼다. 그게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돈벌이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질적으로 그런가 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커피 한잔 하자'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여전히 예전의 그 가치가 공존하고 있느냐고 하면 양적으로, 산업으로서 커피는 발전했지만 문화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음성문화로 인식되던 커피를 따뜻하게 바라보게 된 것은 나쁘지 않다. 의사들에게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것이 없다면 엔지니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커피 하는 사람들도 본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저 유행하니까 투자처로서, 혹은 현실도피처로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 너무 많이 도외시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피기계(배전기, 혹은 로스터)를 만들었고, 바리스타 교육도 시작하는 등 커피업계에선 선구자다.
"결국 소재인 커피를 잘 알고 이 커피로 상대를 행복하게 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는 가볍게 봤다. 1980, 90년대에는 커피 공부 한다고 하면 '무슨 커피를 공부하느냐, 반나절이면 될 텐데…'라며 무시했다. 커피는 지금도 방대한 분야다. 지금은 예전보다 커피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커피를 알려는 사람들이 좀 다른 각도에서 봐주기 때문에 아주 좋아졌다.
커피는 생두를 볶지 않으면 선도가 없고 선도가 없으면 죽은 재료다. 커피가 무기인데 죽은 커피를 무기로 삼을 수는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배전기를 수입해서 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커피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일본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한 것도 굉장히 영향을 끼쳤다. 세계 최고의 생두를 구입하게 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이제 일본을 넘는구나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커피 기계도 마찬가지다. 당시 커피와 관련해서는 수입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커피를 하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우리 것을 만들지 않으면 외국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커피에 특별소비세를 매겼던 시대였다. 내 직업이 남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기계를 안 사고 직접 만들었다. 1900년대 도감을 보고 처음으로 배전기를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볶는 기계다. 지금은 국내 수요의 50%를 국산으로 쓸 것이다."
-커피명가 프랜차이즈는 다른 브랜드와는 다르다.
"원래 프랜차이즈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100개 같은 한 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상징성이니까. 아무래도 상징성이 있는 쪽으로 고집하다가 무너지게 된 것이 커피 산지를 다니면서 생두를 소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비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좋은 커피를 찾았더라도 산지에서는 적정한 양을 사지 않으면 팔지 않았다.
우리는 프랜차이즈를 다른 브랜드처럼 하지 않고 패밀리 사업으로 인식한다. 프랜차이즈는 똑같은 인테리어로 팍팍 찍어낸다. 우리 패밀리는 로컬화시킨다. 병원 인근이면 주로 오는 고객에 맞춰서 변화시키고, 학교 근처는 학생들에 맞춘다.
이를테면 신문사에 위치한 'camp by 커피명가'는 큰일을 할 때 쓰는 생각창고 같은 곳이다. 100년 넘은 계산성당을 앞마당으로 하는 그곳은 정말 아름다운 공간인데다 지역을 움직이는 촉수들이 다 있다. 그 지역의 캠프 같은 곳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정말 맛있는 스페셜티 커피는 어떤 것인가.
"어디까지를 '스페셜티 커피'라고 하느냐면, 한잔의 커피맛이 살아있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면 전체 시장의 1% 미만일 것이다. 통조림에 든 과일을 두고 맛이 살아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과라면 한 입 깨물었을 때 생과일의 맛이 제대로 나는 것일 것이다. 커피 한잔이 5천원이 넘을 이유는 없다. 지금보다 가격이 한 30% 정도 빠져서 좀 더 대중화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커피 한잔을 만드는 데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 선수의 공 하나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커피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커피쟁이는 커피 한잔으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앞으로 인터뷰는 내가 만드는 한잔의 커피로 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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