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사춘기가 빨라져요

만물이 소생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봄이 되면 사춘기라는 단어에 봄을 나타내는 '춘'(春) 자를 생각한다. 봄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사춘기 시절의 변화무쌍한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것일까? 아니면 사춘기가 인생의 봄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을까? 올봄은 이상 고온으로 3월부터 벚꽃이 만개해서 벚꽃축제를 기획하던 지자체들이 비상이란다. 정작 축제가 시작됐지만 벚꽃은 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테리 루트 교수팀은 봄이 시작되는 시기가 평균 10년에 2.3일씩 앞당겨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100년 뒤인 2114년에는 봄이 현재보다 23일이나 먼저 찾아온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계절의 봄이 빨라지고 있는 현상과 함께 인생의 봄인 사춘기도 빨리 찾아오고 있다.

최근 치과에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이 찾아왔는데, 그 나이 또래보다 일찍 유치가 영구치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따라서 영구치에 충치가 생긴 비율도 높아서 치료해야 할 치아도 많았다.

4학년 치고는 영구치가 너무 일찍 나와서 치아 나이로는 어른이라고 했더니, 어머니 말씀이 "벌써 생리도 하고 유방도 발달했어요. 이렇게 일찍 사춘기를 시작하면 키가 더 이상 안 큰다고 하는데 걱정이에요"라고 한다. 그래서 소아과에 성조숙증에 대한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성조숙증은 사춘기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가 평균치보다 일찍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사춘기가 이르게 나타나면 성장판이 닫혀서 그 이후부터 성장이 거의 진행되지 않게 된다. 초등학교 4, 5학년 사이에 급격한 성장이 나타나고, 그 후에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아 결국 최종 어른 키는 작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계절의 봄이 빨라지듯 왜 사춘기도 빨리 찾아오는 것일까? 소아과에서는 '최근 식생활의 서구화를 비롯한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으로 영양 과잉이 이뤄졌고, 이 영양 과잉이 지방과다로 이어진데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환경호르몬까지 겹쳐 성조숙증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점점 봄이 짧고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사춘기가 빨라지는 것은 유년기는 짧고 성년기가 길어지는 것인데, 특히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기도 길어지므로, 이 현상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계절이든 인생이든 자연의 조화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이희경 영남대병원 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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