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슈퍼 섬유

요즘 섬유를 가지고 옷 만드는 재료쯤으로 여긴다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것이다. 방화복, 방탄복에서 항공기의 날개나 동체, 타이어, 골프채, 낚싯대, 휴대 전화에 이르기까지 안 쓰인 곳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섬유가 이처럼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든 데는 슈퍼섬유 덕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슈퍼섬유는 가볍고 강하다. 대표격인 아라미드 섬유의 경우 밀도는 강철의 5분의 1에 불과한데 인장강도는 강철보다 크다.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강철보다 강하다'고 한다. 강도뿐만 아니라 내구성, 내열성, 전도성, 내마모성 등 어느 것 하나 금속에 비해 뒤지는 것이 없다. 5㎜ 정도의 가느다란 굵기로 2t의 자동차를 들어 올리고 500℃ 이상의 열에도 견딘다. '꿈의 섬유', '황금실'이라 불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라미드 섬유를 맨 처음 개발한 것은 미국 듀폰이었다. 듀폰은 1935년 '세기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나일론을 개발해 전 세계를 섬유 혁명의 시대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회사다. 듀폰은 1973년 세계 처음으로 아라미드를 개발해 '케블라'라는 이름으로 상용화했다. 후발주자인 네덜란드의 악조사가 독자적으로 아라미드 섬유를 개발했지만 듀폰은 특허분쟁을 유발, 손발을 묶었다. 결국 뒤에 유럽 법원이 악조사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10여 년에 걸친 특허분쟁에 시달린 악조사는 일본 화학회사인 데이진에 아라미드 사업을 넘기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선 2005년 코오롱이 '헤라크론'이라는 브랜드로 양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케블라'의 영향력은 컸고 '헤라크론'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듀폰은 코오롱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번에는 '특허 침해'가 아닌 '영업비밀 침해'라는 주장을 폈다. 2011년 미국 1심 법원은 코오롱에 약 9억 2천만 달러(1조 120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년간 제품 생산 및 판매를 금지하라는 명령까지 덧붙였다. 코오롱으로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판결이었다. 꿈의 섬유라는 아라미드 섬유의 경쟁자를 잘라 버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는 판결이었다.

지난 주말 미국 항소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1심 판사가 코오롱 측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하면서였다. 1심 판사는 듀폰사를 대리한 로펌에서 근무한 전력이 있었다. 2심 승소는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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