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낙동칼럼] 공공의 적 2

뒷북치기 같아 망설였다. 또 그 이야긴가라는 지적도 걱정됐다. 하지만 이만한 뉴스감이 없었다. 지방선거도, 대통령의 해외순방도 이 뉴스 앞에서는 외면당했다. 바로 '황제노역' 사건이다.

일단 '황제'라는 단어가 붙으면 경험상 좋은 뜻일 수가 없다. 특권과 부조리를 연상케 한다. 그중에서도 황제노역은 황제 버전의 맨 꼭대기 정점에 서 있다. 부아가 상투 끝까지 치민다는 옛말로도 적당한 비유를 찾기 어렵다. 맹자도 '백성은 가난한 게 걱정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이 걱정이다'라는 말씀을 남겼다고 하니 황제노역 네 글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정이 어떨지는 짐작이 간다.

우리 국민들은 유독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특히 마음속으로는 절대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니가 뭔데"라거나 "지가 돈 많고 계급이 높으면 높았지"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데 회장님의 노역 일당을 5만 원이 대부분인 일반인의 1만 배나 되는 5억 원으로 환산했다고 하니 여론이 가만히 있지 못했다. 1백 배도 아니고 1천 배도 아니도 무려 1만 배였다. 어느 정도라야 납득을 하지. 판결은 법원이 내렸지만 검찰도 사실상 역성을 들어주었다. 국민들은 기가 막혀 한다. 재벌에 법과 권력이 합쳐져 한통속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물론 가진 거라곤 몸밖에 없어 몸으로 돈을 때워야 하는 사람들의 5만 원과 회장님의 5억 원이 갖는 가치는 다르다. 5만 원 노역자들에게 그 돈은 생명을 좌우할 수 있지만 회장님의 5억 원은 하루 밥값, 술값일 수도 있다.

그래도 1만 배는 너무 했다. 노역 일당의 차이라지만 사람의 가치와 뭐가 다른가. 그게 이 사회의 잣대라면 너무 절망적이다. 법원과 검찰의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1만 배의 차이가 나는지 걱정스럽다. 1만 배라면 무뿌리와 산삼뿌리만큼의 차이다. 시급은 6천만 원이 넘는 돈이다. 괜찮은 직장인 연봉보다 많다. 법규정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은 납득하지 않는다. 납득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죄악에 가깝다.

황제노역을 만들어낸 제도의 정식명칭은 환형유치(換刑留置)다. 벌금을 내지 못하는 범죄자가 교도소에서 노역으로 벌금 납부를 대신하는 제도다. 문제는 벌금 금액과 상관없이 노역 기간이 3년을 넘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형법에 그대로 나와 있다. 벌금 액수가 크면 클수록 노역 일에 제한이 있으니 일당이 커질 수밖에 없다. 노역 일수를 정하는 것도 판사다. 판사의 재량이다. 여기에 검찰도 한 몫을 거들면 정도가 더 심해진다. 50일 노역에 254억 원 벌금형은 그래서 나왔다. 그게 바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노역 케이스다. 형법 규정대로 했으니 불법이 아니란다.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의 법 감정은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개털과 범털이라는 말이 있다. 개털은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면회 올 사람도 없는 수형자를 일컫는 말이다. 범털은 그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어렵게 설명할 게 뭐 있나. 돈 많은 죄수가 범털이고, 쥐뿔도 없는 사람들이 개털이다. 그래도 범털이라고 하루를 사흘로, 열흘로 쳐서 복역기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날 수는 채워야 한다. 그 점에서 개털이나 범털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환형유치에서는 판사의 재량으로 너무 큰 차이가 난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이다.

불평등이 가득하고, 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범털은 날 때부터 범털이고 개털은 죽어서까지 개털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그래도 우리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번 황제노역 사건의 전말은 그런 믿음조차 무너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난해 7월 '공공의 적'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여대생 청부살인사건의 뒷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잘 나간다는 사람들의 하는 짓거리가 이 사회를 지탱해나갈 힘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뜻에서, 어떤 범죄보다 죄질이 나쁘다는 의미로 공공의 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황제노역 사건의 전말도 있는 사람, 잘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파렴치한 일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파장은 오히려 더 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공공의 적 2'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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