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비구니의 번지점프

개업의로서 병원을 비우기 쉽지 않지만 얼마 전에 휴가차 유명한 외국의 관광지를 다녀왔다. 그곳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 산악자전거 및 번지점프 등 모험적 레저스포츠로 인기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눈에 익은 잿빛 바지저고리를 입고 밀짚모자를 눌러 쓴 비구니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오랜 세월 수행을 한 듯 고요하고 맑은 얼굴의 스님을 만난 곳은 뜻밖에도 줄에 매달려 숲 속을 몇백 미터씩 날아다니는 모험코스였다. 깊은 산 속에서 수행을 하시는 스님이 어찌 이런 모험장에 오셨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워낙 눈에 익은 한국 스님의 모습이라 반갑기도 하여 다가가 인사를 청하였더니 '어제는 패러글라이딩도 하고 번지점프도 했어요. 열심히 공부만 하다가 환갑이 지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리셨다.

여행을 하면 자신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평생을 아끼고 모으며 개미의 미덕을 실천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낯선 여행지에서 느긋하게 삶을 즐기는 베짱이들을 만나는 것이 여행이다. 인적자원 이외에는 별다른 자원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교육마저도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매뉴얼만을 집중적으로 머리에 심어주는 데 치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캐나다, 스위스, 뉴질랜드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관광자원으로 보유한 나라에 가서 그곳 사람들의 삶의 여유와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양보와 배려를 경험하는 것은 그야말로 '치유'에 가까운 소중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여행빈도가 전년에 비해서 11% 증가했다고 한다. 이렇듯 가깝거나 먼 여행을 통해서 경쟁과 쟁취의 틀 속에 갇혀 살던 한국인들이 해외의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내면적 성숙'을 얻고 귀환한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소를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듯이, 비싼 돈을 들여 외국여행을 하더라도 앞장선 가이드의 깃발만 보고 따라다니다 돌아오는 여행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산속에서 평생수행의 고단한 삶을 살던 비구니 께서 외국의 모험장에서 패러글라이딩과 번지점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환갑이 지나서 정신을 차려보니…'라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환갑이 지나도록 평생 고난의 수행을 한 자신에 대한 자기애의 표현으로 외국여행과 모험적 레포츠를 하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환갑이 지나 정신을 차려 머나먼 외국여행을 해보니 전혀 다른 새로운 중생제도의 또 다른 깨우침을 얻으셨다는 것일까?

정재호<오블리제성형외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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