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우토와 황사

우리나라에서 황사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삼국사기 2권 신라본기 편은 아달라이사금 21년(서기 174년) '춘정월 우토(雨土)'란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우'란 '비'라기 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우토란 오늘날의 황사를 표현한 것으로 본다. 백제시대엔 379년 음력 4월 흙이 하루 종일 비처럼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606년 도읍에 우토가 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구려 시대엔 640년 사흘 동안 햇빛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4년 뒤인 644년에는 겨울철에 붉은 눈이 내렸다. '붉은 눈' 역시 황사를 뜻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기록 문화가 꽃을 피운 조선시대에는 기록이 많고 구체적이다. 조선왕조실록 명종 조는 1550년 한양에서 흙이 비처럼 떨어졌다고 전했다. 같은 해 지방에는 지붕과 밭, 잎사귀에 누렇고 허연 먼지가 덮였다고 썼다. 조선시대 황사기록은 105건에 달한다.

황사는 중국과 몽골의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이 주 발원지다. 최근 몽골 초원이 급격히 사막화하면서 동진하고 있다. 황사는 미세먼지가 강한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머물다 역시 바람을 타고 이동해 내려앉는 현상이다. 요즘은 중국 동부공업지대의 오염된 미세먼지까지 겹치기 일쑤다. 한 번 발생할 때 생기는 황사는 평균 1천만t이 넘는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쌓이는 미세먼지는 4만 6천t~8만 6천t에 이른다. 15t 덤프트럭으로 3천~6천대에 달하는 양이다.

대구에서도 황사 관측일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1960년대 대구의 황사 관측일수는 10년을 통틀어 10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70년대 34건, 80년대 27건, 90년대 55건으로 증가속도가 가팔라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90건으로 급증했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 30건을 넘고 있다.

황사는 이래저래 애물단지다. 기관마다 달리 추정하지만 피해규모가 해마다 수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데는 큰 이의가 없다. 폐질환 발생자의 사회적 비용까지 환산하면 피해규모는 더 커진다. 가히 봄의 불청객이라 할만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황사가 찾아왔다. 요즘 황사는 우토와는 다르다. 각종 중금속과 황화물을 머금고 있어 건강에 치명적이다. 황사는 안 오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왕 온다면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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