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금오도 비렁길

돌담에 부서지는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 걷기가 싫어졌다

금오도는 자연식물원이다. 해변 바위 벼랑에는 콩란과 비슷하게 생긴 넝쿨들이 앙증맞게 무리 지어 붙어 있고 이름 모를 풀들이 겨울 끝자락에서도 싱싱한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풀꽃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이름이라도 기억하고 있어야 남도 외진 섬에 홀로 피어 있는 야생초들과 대화가 될 것 같다.

여수 금오도에 간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비렁길'을 걸으러 간다. 비렁길은 벼랑길의 이곳 사투리다. 이 길은 길이 18.5㎞, 8시간 반이 걸린다.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해변길이어서 지루하지 않다. 하늘과 바다와 이야기하고 길섶에 피어 있는 풀꽃들과 눈맞춤하며 걸으면 그렇게 피곤하지 않다.

비렁길은 섬의 남쪽인 함구미 항에서 장지까지 연결되어 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오솔길이 넓어졌고 난코스는 나무다리와 계단으로 조성되어 한결 걷기가 편하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게 특징이다.

오늘 트레킹 식구는 세 사람으로 아주 단출하다. 갑자기 닥친 삼월 꽃샘추위의 위력이 얼마나 센지 바람막이를 껴입고도 덜덜 떨어야 했다. 우선 1코스부터 걷기 시작하되 잔여 구간은 자동차로 돌아보기로 했다. 함구미 항에서 마을을 벗어나 밭둑으로 올라서니 해무가 낀 바다는 흐릿했지만 불어오는 산소 바람은 정말 산뜻하고 상쾌했다.

이곳 금오도는 우리나라에서 21번째 큰 섬이다. 옛날부터 산림이 울창하여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검게 보인다. 섬의 형상이 황금빛 자라 모양이어서 이름을 금오도라 했다. 길섶에는 송이째 떨어진 동백꽃이 붉은 카펫처럼 깔려 있었고 대나무 숲이 푸른 키를 자랑하며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단애와 단애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오솔길은 노르웨이 피오르의 험난한 구간을 연상시킨다. 특히 50m 절벽인 용머리와 직벽 병풍처럼 생긴 미역널방은 정말 장관이다. 바위마루 끝에 서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어지럽다. 옛 어른들은 용바위에 올라 배밀이로 바위 끝으로 기어가 상어낚시를 했다고 하니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그 스릴을 나도 한번 즐겨보고 싶다.

금오도는 자연식물원이다. 해변 바위 벼랑에는 콩란과 비슷하게 생긴 넝쿨들이 앙증맞게 무리 지어 붙어 있고 이름 모를 풀들이 겨울 끝자락에서도 싱싱한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풀꽃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이름이라도 기억하고 있어야 남도 외진 섬에 홀로 피어 있는 야생초들과 대화가 될 것 같다.

1코스를 절반쯤 걸었을까,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송광사지로 알려진 절터가 푸른 채소밭으로 변해 있었다. 그 옆 소나무 밑에서 흑염소 두 마리가 마른 풀을 씹고 있는 모양이 게으른 중이 불경을 외는 것 같았다.

산꼭대기 바로 밑 바위 벼랑 옆에, 그것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 왜 절을 지었을까. 고려 명종 25년 보조국사 지눌이 모후산에 올라가 좋은 절터를 찾고 있었다. 그는 나무를 깎아 만든 새 세 마리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한 마리는 순천 송광사 국사전 터로 날아갔으며, 두 번째 새는 고흥군 금산면 송광암으로, 마지막 새는 이곳 금오도 송광사 터에 내려앉았다. 그래서 삼송광이라 부른다.

이름난 절에는 창건설화가 따른다. 영주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는 종이로 봉(鳳)을 만들어 도력으로 날려 보냈더니 그 새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봉정사 터에 앉았다는 전설이 있다. 또 해남 미황사는 바다 건너온 소가 주저앉은 터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렇듯 동물들의 신통력에 인간들이 의존하고 있으니 'K 앤 J 로펌'처럼 '새 앤 소'란 풍수사무소를 열었으면 묫자리를 구하는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을 텐데.

금오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풍광만 좋은 것은 아니다. 곳곳에 볼거리가 있고 볼 것 뒤에는 이야기가 있다. 오솔길 옆 산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섬 특유 장묘문화의 소산인 초분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바로 매장하지 않고 나무판자나 돌무지 위에 관을 얹고 초가 형태로 이엉과 용마루를 덮는다. 2, 3년이 지나 살이 썩고 뼈만 남으면 그걸 간추려 다시 매장을 한다. 황동규 시인의 '풍장'이란 시가 생각난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중략)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시인의 말대로라면 삶과 죽음의 간극은 별것 아닌 것 같다. 매장이면 어떻고 풍장이면 어떠랴. 손목에 걸린 전자시계를 보며 시간을 헤아리고 바람과 놀고 있는 게 저승이라면 이승과 크게 다를 게 없네.

두 번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돌아서고 말았다. 돌담 위에 부서지는 이승의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 걷기가 싫어졌다. 이승은 참 좋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