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영화 '한공주' 주연 천우희

성폭행으로 친구 잃은 공주…"강렬한 이미지 연기가 내 무기"

제13회 마라케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던 프랑스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는 "여주인공의 연기가 놀랍고 훌륭하다"고 극찬했다.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를 본 뒤 여주인공인 배우 천우희(27)를 향한 평이었다. 꼬띠아르는 천우희가 그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이제 내가 그녀의 팬이 될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내 연기한 걸 좋아하니깐 신기하고 행복했어요."

천우희는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이었다. '한공주'가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잇단 수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스케줄이 안 맞아 참석 못 해 아쉬워 한 그는 꼬띠아르로부터 들은 칭찬이 위안이 된 듯하다. 개봉을 앞두고 언론과 평단, 관객의 칭찬도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는 들떠 있지는 않았다. 인터뷰 내내 꼬띠아르 얘기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침착했다. 2011년 개봉해 흥행한 영화 '써니'에서 후반부에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본드녀'. 천우희가 연기해 호평받은 캐릭터다. 당시 주위에서 바람을 잔뜩 불어넣었다. "잘되겠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가족들이 또 흥분할까 봐 '한공주' VIP 시사회에 부모님을 부르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써니' 이후에 바뀐 게 뭐가 있느냐고요? 별로 없어요. 사람들도 잘 몰라봐요. 이미지가 겹치지 않아서 특히 더 몰라보시는 것 같아요."(웃음)

물론 달라진 게 있긴 하다. 소속사가 생겼고, 영화를 향한 관심과 열정이 더 많아졌다. '한공주' 출연이 그렇다. 사실 소속사 나무엑터스는 시나리오를 보고 걱정과 우려를 했다. 쉽지 않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천우희를 믿었다. 결과는? 호평 일색이다.

'한공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가게 된 공주가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이야기를 담았다. 청소년 집단 성폭행과 자살 등이 소재다. 공주의 어깨를 짓누르는 아픔과 슬픔이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작품이다. 복잡하고 답답하며 힘들었을 연기를 천우희는 제대로 소화해냈다.

천우희는 "처음에는 공주의 입장보다 제3자 혹은, 관객의 마음으로 읽었다. 사건을 겪은 아이의 마음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는데 읽을수록 그 아이의 현실 자체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회상했다.

극 중 공주는 외로운 인물이고, 이야기 자체가 어렵고 무겁지만 현장에서 일부러 더 밝게 지냈다. "처져 있으면 다른 배우들이나 스태프 모두 우울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천우희는 분명 '한공주'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마더'와 '써니'에 이어 '한공주'까지 강렬한 이미지의 연기를 펼쳐오는 그가 센 이미지로 치우쳐 보일 수 있겠다는 걱정스러운 말을 건네자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물론 부담은 있다. 하지만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겁이 많고 내성적이에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연기에서만큼은 강렬한 것들에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제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죠. '우아한 거짓말'에서도 조금은 다른 학생을 보여줬으니까요. 제가 감내해야 할 것들이죠. 전 평범한 역할도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써니' '우아한 거짓말' '한공주'…. 그러고 보니 유독 학생 역할과 인연이 많다. 그런데 그의 나이를 알면 깜짝 놀란다. 한국 나이로 28세. 천우희는 "민망하고 부끄럽다. 별의별 교복을 다 입어본 것 같다"고 웃는다. 그는 "한 번쯤은 더 청소년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너스레도 떨었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고 밝힌 천우희. 대학교(경기대 연기학과) 때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작품마다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진짜일까. 그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연기 수업을 받는 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지만, 한 부분으로 막혀 버릴 것 같아서요. 연기 연습요? 집에서도 부모님이 계시니까 소리 내서 연습하는 게 부끄러워요. 작품을 받으면 그냥 씻을 때, 밥 먹을 때, 잠잘 때 등 항상 생각하고 항상 고민하는 편이에요."

딱히 누군가에게 연기에 대해 배우지 않았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아는 그의 폭발력은 장난이 아니다. 어느새 영화 전체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배우가 됐다.

"예전에는 어떤 한 장면에서 기능적으로 보여줘야 했죠. 긴 호흡으로 끌고 가고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극 전체를 관통해 연기해야겠다는 생각과 고민을 많이 했죠. 이렇게 한 작품 전체의 캐릭터를 만드는 게 흥미로운 것 같아요. 모든 걸 다 온전히 만들어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무척 좋더라고요. 하하하."

'한공주'를 향한 애정이 큰 그는 청소년관람 불가 등급이 나온 것과 관련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천우희는 "소재 자체 때문에 그런 판정이 나온 것 같다"고 짚었다. "청소년들이 많이 봤으면 했는데 정말 아쉬워요. 어른들보다 학생들이 더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재등급 심사 어떻게 안 될까요?"(웃음)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고 하면 부담이 되느냐고 물었다. "좋은 말씀 해 주시고 칭찬해주시는 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앞으로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인데?'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연기할래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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