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도약하려면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개방의 문화가 꼭 필요합니다."
김병준 국민대학교 교수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바를 압축한 한 문장이다. 지난달 21일 김 교수는 대구 지역의 한 청년단체의 초청 강연차 대구를 방문했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김 교수에게 '대구, 어떻게 도약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인터뷰는 강연 시작 1시간 전에 이뤄졌다.
김 교수는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1976년 영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대구에서 지냈고 졸업 이후에는 대구를 떠나 살아왔다. 40년 가까이 대구를 떠나 살아온 그에게 40년 전 대구와 지금의 대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어머니와 형제가 아직도 대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대구를 자주 찾는 편입니다. 외연은 40년 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폐쇄성이 강한 지역문화는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대구, 도약하려면 개방하라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리처드 플로리다의 말에 따르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3종류의 T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바로 Technology(기술), Talent(재능), Tolerance(관용)입니다. 특히 마지막 T인 관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재능도 기술도 유입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계모임'으로 대변되는 대구지역의 폐쇄적 문화 때문에 많은 외지인이 대구를 답답한 도시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대구로 사람이 들어오지 않고 발전도 더뎌지는 겁니다. 대구의 도약에 대한 고민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김 교수는 지금 대구가 앞으로도 쉽게 도약하기 힘든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일단 지금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되는 정책 흐름을 돌리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수도권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똘똘 뭉치는 반면, 비수도권의 대표지역인 영남과 호남은 분열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지방을 살리기 위한 정책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점이 두 번째 이유다. 게다가 '내륙'이라는 불리한 입지까지 겹쳐 있기 때문에 대구의 미래가 생각보다 밝지 않다는 것이 김 교수의 분석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구가 살아남으려면 개방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를 가진 도시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던 시기에는 노동이든 자본이든 하나만 투입해도 그만큼 돌아오는 '요소투입형 경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 자본, 기술이 모두 합쳐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혁신주도형 경제'로 바뀌고 있지요. 혁신주도형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입니다. 이는 모두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개방적인 분위기는 필수입니다."
김 교수는 차기 대구시장의 조건에도 '개방성'과 '다양성'의 키워드를 주문했다.
"차기 대구시장은 대구 사회의 혁신과 통합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문화적 다양성, 개방성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시장이 대구에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단순 행정전문가가 대구시장이 돼서는 대구가 발전하기 힘들 겁니다."
◆지금의 지방자치, 안 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1995년부터 경실련에서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지방자치에 관한 저서도 여러 권 낼 만큼 국내에서는 지방자치에 관한 권위자로 통한다. 김 교수는 지금의 지방자치제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제도적으로 지방의 자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지방자치를 하는 이유는 권력을 주인인 국민 가까이에 두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지방정부에도 자치권한을 준 것이구요. 하지만 지금의 지방자치제 아래에서는 누가 당선돼도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게 설계돼 있어요. 지금의 지방자치제에서 규정된 지방자치단체장의 임무를 살펴보면 50%는 중앙정부의 위임사무입니다. 나머지 50%가 지방정부의 몫이지요. 그래서 지방선거에서 뽑힌 사람들이 지방정부의 일보다는 중앙정부나 국회의원의 충성경쟁에 매달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6월에 열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작심하고 일침을 가했다. 지방자치가 망가져 가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수 싸움'에만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을 보면 여야 모두 지방자치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누가 얼마나 많이 지방선거에 당선자를 내느냐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대단히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중앙에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지방자치제 실시 후 정치권이 지방자치제 발전을 위해 뭘 했는지 따져 묻고 싶은 지경입니다."
김 교수는 지방자치제 개선을 위해 지역주민의 노력이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지방자치제 실시 초기 경기 부천시가 지역의 담배자판기 설치 조례를 통과시키기 위해 부천시와 시의회, 부천시 주민들이 노력했던 과정을 예로 들면서 지금의 지방자치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부천시는 학교 앞에 담배자판기가 설치된 것을 보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설치를 막는 조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상위법령에 어긋난다는 법률검토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부천시와 시의회, 주민들은 관련 부처를 찾아가 법률 및 법령 개정을 끈질기게 요구해서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동네 안에 국가가 있고 지방이 바뀌면 국가가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죠. 지방자치제를 한다고 지역이 저절로 좋아지는 일은 없습니다. 국민이 지방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제대로 요구하고 따끔하게 질책해야 합니다."
김 교수가 지방자치에 관한 전문가이고, 지방선거도 다가오는 데다 대구의 청년들을 만날 때의 주제 또한 '대구, 어떻게 도약할 것인가'이다보니 나눈 이야기들이 대부분 지방자치와 지역발전에 대한 것들이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민이 비수도권 정책 연합과 국가 균형발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면 대구는 분명 도약할 거라는 데에 이야기의 방점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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