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애란의 청춘 발언대] 든든한 책임감

요즘 제가 조금 변한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달라진 기분입니다.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드디어 저 스스로 '책임'이란 어떤 느낌인지 서서히 알아가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실은 지난 삶 동안, 무엇 하나 제대로 책임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저의 인생마저도 책임지지 않았죠. 엄밀히 따지면, 제 인생은 제 것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나'를 만든 것은 나의 노력보다는 부모님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누군가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의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서 정의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저 스스로는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성인이 되고 난 후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쁜 성적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 저의 책임이라 볼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모든 일은 '책임'져야 할 일이라기보다, '경험'의 일환에 불과했습니다. 어떤 일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 했다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고나 할까요. 색다른 일을 알아가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결국엔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않을 것이기에, 알아가는 노력도 도중에는 사라지곤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관심 있었던 분야의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일에도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고, 맡겨진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최선은 다하고 있진 않은지 고민했습니다. 내가 맡은 일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책임'이란 단어가 그리 유쾌한 뜻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의무'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책임'은 억지로 떠넘겨지는 일에 대한 임무나 부담이란 의미가 있으니까요. 책임의 '책'(責)이란 한자도 '꾸짖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단어 뜻대로만 보자면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은 누군가가 꾸짖듯이 넘겨 준 일에 대한 부담감에 가까울 겁니다.

달갑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은 결국 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게 됩니다. 그런 일을 맡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른 시일 내에, 적은 노력으로 어떻게 그 일을 해결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겠죠. 내가 일을 관두고 오게 될 누군가에게, 혹은 이 일을 시키는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이란 단어가 주는 묘한 '든든함'이 있습니다. 의무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실없는 느낌인데, 책임은 실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이란 뉘앙스가 있으니까요. 저에게 책임은, 결국 '현실에서의 삶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느냐'란 뜻으로 와 닿습니다.

어쩌면 진짜 책임이란 건, 그 사람이 직접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짊어질 수 없을 겁니다. 주체적으로 '책임'을 받아들이고 짊어지려 한다면, 오히려 발전적이게 될 겁니다. 물론 어떤 일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그런 마음이 오진 않겠지요. 기꺼이 책임에 따르는 수고를 하려 하는 마음, 그를 통해 자신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니까요.

아직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이러한 마음가짐을 경험하게끔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짜 책임을 짊어져야 할 나이가 돼서는, 나의 것이 아닌 책임 속에서 매일 같이 그것과 싸우면서 살아가야만 하죠. 책임감도 연습이 필요한데 말이죠.

물론 어린 나이에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책임을 짐으로써, 일의 결과에 대한 비난과 조언은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이 될 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성숙해집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되겠지요. 그것이 책임으로부터 나오는 진짜 '힘'이 아닐까요.

대구경북 대학생문화잡지 '모디' 전 편집장 smile5_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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