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명칼럼] 흉기 안 들었으니 살인 아니라고

국민 법감정 무시한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 판결

뉴욕타임스는 최근 161년 만에 정정 기사를 냈다. 1853년 1월 20일 자 흑인 남성 납치사건 기사에서 피해를 입은 '솔로몬 노섭'(Solomon Nothup)의 이름 철자를 노스롭(Northrop) 혹은 노스럽(Northrup)으로 2번 잘못 썼다는 것이다. 솔로몬 노섭의 이야기는 '노예 12년'으로 영화화돼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등을 받았다. '기사의 정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뉴욕타임스가 1998년 10월 24일 알칸소 주 모릴턴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뤘다.

모릴턴에 사는 크리스토퍼 파크스라는 초등학교 3학년 소년이 자기 머리에 총을 쏴 치명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다음 날 숨을 거뒀다는 기사이다. 사건은 성적이 떨어진 아들을 체벌하려고 엄마가 회초리를 구하러 밖에 나간 새 벌어졌다. 여덟 살 아들은 벽에 걸린 총을 내려 자살해버렸다. 탈무드에도 병을 깨뜨린 아이에게 아버지가 따귀를 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공포심에 젖은 아이가 밖으로 뛰쳐나가 깊은 구덩이에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모의 체벌 으름장이 엄청난 공포로 받아들여져 비극을 초래한 사례이다.

그래서 미국'영국'독일은 회초리를 흉기로 간주하고 체벌을 금지하며, 아동학대에 살인죄를 적용한다. 미국은 아동학대자에게 최고 종신형을 내리고, 영국은 신체적 체벌만이 아니라 감정적 학대까지 법으로 다룬다. 동화 속 신데렐라의 계모처럼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정서적으로 학대하면 10년 징역형이다. 영국의 '신데렐라(방지)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느 별나라에서 온 법적 잣대인지 아동학대를 근절하려는 세계적 법 흐름과 맥이 통하지 않고, 국민 법 감정에도 맞지 않는 느슨한 형량을 선고했다. 영국은 자녀를 감정적으로 학대만 해도 최고 10년 징역형을 살게 하는데, 칠곡의 계모는 어린 딸(8)을 짓밟아 결국 숨지게 했는데도 살인죄를 피해갔다. 폭행당한 당일 사망한 게 아니면 살인에서 자유로워지는지 괴물로 변해 폭력을 마구 행사한 칠곡 계모에게 상해치사죄가 적용됐다. 당연히 온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며, 딸을 짓밟아 기어코 숨지게 한 폭력 새엄마에게 왜 살인죄가 아닌 온정적 잣대를 들이대는지 국민 법 감정은 분노하고 있다.

'애 잘 키우는 반장 어머니'로 소문난 울산 계모는 의붓딸(8)에게 뜨거운 물을 퍼부어서 화상을 입히는 인면수심의 행동을 한 것도 모자라 발로 배를 걷어차 갈비뼈 24개 중 16개를 부러뜨렸다. 몸이 반 동강 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의붓딸은 결국 부러진 갈비뼈에 폐를 찔려 '폐 파열'로 사망했다. 울산 계모 역시 상해치사죄를 적용받아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의 판결은 기가 찬다. 계모가 흉기를 쓰지 않았고, 폭행을 가한 날짜와 사망일의 시간 차가 있고,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머리를 발로 차지 않았으니 살인이 아니란다. 살인에 대한 확정적 또는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나. 새엄마에게 두들겨 맞아 어린 삶을 종료 당한 아이들의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 것인가.

의붓딸을 짓밟아 장간막 파열로 사망케 한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자칫 죽은 아이의 언니(12)가 죄를 뒤집어쓸 뻔했다. 동생이 폭행당해 죽은 극도의 공포를 경험한 언니는 계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어 처음에는 "내가 동생을 죽였다"며 허위 증언을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정운선 경북대 소아정신과 교수를 주치의로 만나면서 누명을 벗었다.

그런데도 울산과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해서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하자 여론은 들끓고 있다. "얼마나 더 잔인해야 살인이냐" "칼을 안 들면 살인 아니냐"는 비판은 이번 사건 재판부가 아동학대를 금지하는 시대정신을 읽지도, 아동학대를 근절시키겠다는 적극적 의지도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재판부의 자녀들이 같은 꼴을 당했어도 상해치사죄만 적용할 것인지 묻고 싶다.

2012년 발생한 아동학대 건수는 6천403건, 최근 10년간 2배 이상 늘었다. 이 중 87%가 가정에서 발생한다. 이번 울산'칠곡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둘 다 계모가 저질렀지만, 친부모의 아동학대 빈도가 더 잦다. 아직 훈육과 체벌 그리고 학대에 대한 구분조차 못 한다.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국가의 미래이다. 어린이를 보호하지 않고 학대하는 가정'사회'국가에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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