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인 양우성 군과 할머니 최차남(59) 씨는 밤마다 실랑이를 벌인다. 우성이의 상반신 절반 정도를 뒤덮고 있는 화상 흉터 때문이다. 우성이는 흉터를 긁으려 하고, 할머니는 말리면서 옥신각신한다. 상처 부위가 가려워 사방을 뒹구는 우성이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는 안타까움에 몰래 눈물을 흘린다. "벌써 6년째 저러고 있으니 저놈도 나도 죽을 노릇이죠.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하는 게 전부인데 2년에 한 번씩 하는 피부이식 수술비와 병원비 때문에 점점 힘들어져요."
◆불장난으로 상반신 피부가 녹아버린 우성이
우성이의 몸에 화상 흉터가 생긴 것은 8살 때다. 한 살 많은 누나와 같이 놀던 우성이는 호기심에 라이터를 만졌고, 라이터의 불은 입고 있는 옷으로 옮겨붙었다. 이 사고로 우성이는 오른쪽 옆구리에서부터 목까지 3도 화상을 입었다. 4개월간 어린 우성이는 6번에 걸친 대수술을 해야 했다.
우성이의 화상은 몸에 흉측한 흉터를 만들었다. 화상으로 살갗이 녹아들어 턱과 목의 피부가 붙어버려 입을 제대로 다물 수도 없었다. 옆구리 쪽 피부도 팔과 붙어 팔을 완전히 들어 올리지 못했다.
상처는 마음에도 남았다. 사고의 충격으로 소아우울증을 앓았고, 후유증으로 발달장애까지 겪게 됐다. 이 일로 우성이는 지적장애 3급 진단을 받았다.
우성이의 누나도 아픈 동생을 지켜보며 자신이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겨둔 아버지도 우성이의 사고로 충격을 받고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홀로 아이들을 키우던 할머니는 슬퍼할 새도 없었다. 매일 우성이를 돌보고 병원비 1천800만원 걱정 때문이었다. "앞이 깜깜했죠.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 아버지까지 휘청거렸으니….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수술비는 겨우 냈지만 화상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나중에는 병원에서 도망쳐 나왔어요."
◆지극정성으로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
할머니 최 씨는 본인도 성치 않은 몸으로 6년간 우성이를 돌봤다.
2시간에 한 번씩 약을 발라줘야 하는 화상흉터 때문에 최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성이의 학교와 집을 오갔다. 밤이면 흉터 부위를 한 시간씩 마사지를 해주고, 흉터가 가려울까 기름진 음식을 피해서 먹이는 등 할머니의 하루하루는 우성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지극정성으로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는 사실 우성이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다. 22세 젊은 나이에 결혼한 최 씨는 시집을 가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남편에게 4살과 1살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혼 5년여 만에 이혼을 했지만 아이들에게 최 씨는 엄마였다. 두 아들이 최 씨를 찾아왔고 그중 둘째 아들이 우성이 아버지다. 최 씨는 "애들이 서울에서 대구까지 나를 찾아왔는데 내칠 수가 없었다. 이후 재혼도 했지만 우성이의 큰아버지와 아버지를 데리고 살았다"고 말했다.
의붓아들들이 자라 집을 떠난 후에도 최 씨는 이들에게 엄마였다.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까지 한 우성이 아버지가 남매를 데리고 찾아오자 최 씨는 두말없이 아이들을 맡았다. 화상 사고 이후 생활비를 마련하던 식당일도 그만두고 하루종일 우성이만 돌보는 힘든 생활을 6년째 하고 있지만, 최 씨에게 우성이는 혈육이다. 최근에는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무릎 관절 수술까지 하면서 몸이 쇠약해졌지만 최 씨는 우성이 걱정뿐이다.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가족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우성이는 신기하게도 씩씩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나랑 꼭 닮아서 내 손주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2년에 한 번 피부이식, 비용 걱정에 눈물짓는 할머니
사고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우성이는 2년에 한 번씩은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 몸은 자라지만 피부가 같이 성장하지 않아 화상 부위를 적절히 늘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피부를 떼어낸 허벅지와 엉덩이 부위에도 또 다른 흉터가 생겼다. 대신 수술 덕분에 턱과 목은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피부가 붙어 제대로 들 수 없던 팔도 이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우성이 마음의 흉터는 더욱 심해졌다. 발달장애로 6, 7세 정도의 행동을 보이고,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면서 수많은 상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도 함께 상처를 받았다. "너무 힘든 일을 당하는 날에는 '그냥 우성이랑 같이 죽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어린 것이 불쌍해서 그럴 수도 없고…."
할머니의 정성 덕분에 우성이는 태권도와 축구를 좋아하고 야구선수가 꿈인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지만, 앞으로의 걱정이 만만치 않다.
성장할 때마다 받아야 하는 피부 이식 수술 비용만 1천만~2천만원. 흉터에 바르는 연고가 10만원, 화상환자 전용 보디샴푸가 6만원, 병원 진료비 등 매달 치료비만 50만원이 넘게 든다. 우성이를 돌보느라 생활비조차 벌지 못하는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게 수입의 전부다.
최근에는 우성이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소원은 우성이가 한글을 배워 다른 아이들처럼 일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티기에 할머니는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내 몸 아픈 것은 참으면 그만이지만 수술비가 없어 우성이 흉터를 치료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와요. 돈 걱정 없이 치료만 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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