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있어라' 안내방송 골든타임 놓치게
단 한 명의 생존자라도 끝까지 살려내야
사고 원인과 피해 규모 등이 유사하다는 20여 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로 10명의 새내기 대학생들을 떠나보낸 충격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후진국형 대형참사가 일어났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00여 명을 비롯한 승객과 승무원 475명을 태운 6천825t급 여객선이 침몰해 293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배 안에 갇혀 있는데, 속수무책이다. 생사조차 모르는 실종자 대부분이 우리의 아들딸 같은 고교생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을 어두운 바닷속 차가운 배 안에 가두고 말았다.
국내 최대이자 최고의 크루즈선이라 자랑하던 세월호가,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하던 대형 여객선이 왜 그리도 허망하게 침몰했는지. 그 이유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사고가 발생하고 2시간가량 대피할 시간이 있었다는 게 생존자들의 증언인데, 그동안 선장과 승무원들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허술한 초기 대처에다 생명을 살릴 골든타임도 놓쳤다. 긴급 상황 발생에 따른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승객들을 긴급 대피시키기 위한 구명정 운용 방법이나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사방에서 사나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밖으로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어 달라'는 안내방송이 웬 말인가.
해운 사고가 났을 경우 선장과 승무원은 승객을 구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나서 가장 나중에 탈출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기 이전에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 승무원 한 명만 승객 구조에 나서다 희생되었을 뿐, 선장과 선원 17명은 많은 승객이 배 안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먼저 탈출을 했다. 그 많은 학생을 침몰하는 배 안에 내버려두었다.
1994년 건조된 세월호는 우선 노후한 배로 분류된다. 낡은 배를 몰고 안개 낀 바다를 무리하게 출발한 여객선이 목적지까지 운항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항로를 변경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우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고에 기민하게 대처하며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해야 할 정부의 혼란스러운 대응은 국민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고발생 10시간이 넘도록 여객선 승선자 명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물론 구조자 숫자'승선자 숫자조차 엉터리로 발표해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이게 선진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땅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그러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도 "처음과 나중에 발표한 구조인원 차이가 어떻게 200명이나 될 수 있느냐"고 질책한 것이다. 더구나 경기도교육청의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엉터리 문자 메시지는 학부모들의 억장을 더 무너지게 만들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허가 및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와 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의 책임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 숱한 참사를 겪으면서도 우리의 대응은 어떻게 이처럼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가. 정부는 과연 대형사고에 대한 대처방안이 있는가. 늑장 대처와 안이한 대응으로 다시 대형 참사를 부르곤 하는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를 처절하게 되돌아 볼 일이다.
'엄마, 말 못할까 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는 내용의 여객선에 갇힌 고교생 아들의 마지막 카톡과 '우리 아들 어디 있니' '막내딸, 너 없이 난 어떻게 살라고' '생때같은 우리 손주, 바닷속에서 얼마나 추울까…'라고 통곡하는 학부모와 가족들의 모습은 온 국민의 슬픔으로 침잠한다.
아직도 선실에 갇힌 것으로 보이는 실종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구출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가족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남아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 구출작업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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