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9일 정부는 고등학교 반 배치고사, 중간'기말고사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사실상 학교 차원의 선행학습을 금지하겠다는 의미다.
정부가 선행학습 금지법을 내놓은 것은 높은 수준의 시험에 대비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교육이 횡행하는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조치로 읽히고 있다. 그러나 공교육에 대해 '법적인 제재'를 가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교육을 줄이고자 하는 시민단체는 이 법을 시행하면 과도한 선행학습을 줄일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반면 공교육기관과 교사 등은 규제부터 만들 것이 아니라 사회 분위기가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법안 찬성 측인 대구참교육학부모회와 반대 측인 대구시교원단체총연합회의 입장을 들어봤다.
◆"사교육 수요 점차 줄어들 것"…김정금 대구참교육학부모회 정책실장
-선행학습 규제 특별법 시행령안에 대한 평가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고 임시 처방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가장 큰 해결 과제는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과 대학 서열화 등의 해소다. 이를 당장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선행학습 규제로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으리라 본다. 앞으로 '교육과정 운영 정상화 추진위원회'가 발족해 기존 입시제도의 오류를 다잡는 등 시행과정이 이 법안의 취지에 맞게 실효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
-법안에 따르면 공교육 규제 강도와 비교하면 사교육은 선행학습을 한다는 광고만 안 하면 되는 등 그 규제가 덜하다. 법이 도입되면 학원만 이득을 보는 것 아닌가.
▶당장은 학원 업계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법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법안이 시행되면서 학부모들이 선행학습은 학교 성적이나 입시에 더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경험을 쌓게 된다면 사교육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 수 있다.
-학생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굳어질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선행학습이 모든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고 선행교육을 받을수록 더 이익이 된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지적이다. 선행학습이 학생에게 도움이 된다면 학교든 어디서든 더욱 장려해야지 규제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 법안은 선행교육이 학생들의 정상적인 지적 발달을 방해할 뿐 아니라 자칫 아이들을 망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부유한 사람이 사교육에서 선행교육을 더 많이 받고, 그래서 더 유리해진다는 전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학교가 선행학습 논란을 피하려 심화문제 출제를 꺼리면 내신 시험의 변별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교육은 아이들의 지적 발달을 돕는 것이지 아이들을 변별해 가려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변별력이라는 것은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희생하면서도 지켜야 하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다만, 학생들의 교육활동 결과를 수준에 따라 나타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나.
▶다른 대안이 있으면 가장 좋을 것이나 현재와 같이 무분별하게 경쟁적으로 선행교육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라 본다.
-선행학습 규제가 입법 의도에 맞게 정착되려면 어떤 인식이나 제도 등이 필요한가.
▶가장 큰 문제는 교육 담당자들이 이 법안의 취지에 얼마나 동의하느냐다. 또한, 교육과정에 맞는 교육이 실질적으로 가장 최상의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상급 학교 입학전형에서 선행교육을 부추기는 전형이 금지될 수 있도록 선행학습 영향평가나 교육과정 정상화 심의위원회 등의 활동이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과도한 대입경쟁부터 개선"…이종목 대구교총 회장
-선행학습 규제 특별법 시행령안에 대한 평가는.
▶사교육 과열 현상 및 학생들의 학습 부담, 소모적 경쟁 등 교육적 폐해를 유발하는 선행교육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는 법안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선행교육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대학입시를 정점으로 한 입시 경쟁이다. 입시 경쟁이 사라지고 지나치게 어려운 교육과정을 개선하는 등 근본적 처방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치 없이 선행학습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안에 따르면 공교육 규제 강도와 비교하면 사교육은 선행학습을 한다는 광고만 안 하면 되는 등 그 규제가 덜하다. 법이 도입되면 학원만 이득을 보는 것 아닌가.
▶선행학습은 학교보다는 학원, 교습소 등 사교육 기관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벌조항 없는 선언적 의미의 광고 금지 법적 조항이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학생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굳어질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한다. 온라인 강의는 교육과정과 무관하게 들을 수 있는 만큼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비밀 고액 과외가 확산할 우려가 있다. 그런 만큼 사교육 격차는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본다. 교육 불평등이 심화할 우려가 있다.
-학교가 선행학습 논란을 피하려 심화문제 출제를 꺼리면 내신 시험의 변별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물론 학교가 앞장서 선행교육을 막고 교육과정에 선행된 문제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절대평가 체재 아래에서 변별력을 확보하려고 내는 심화문제까지 선행학습으로 규정해서는 곤란하다. 심화문제에 대해 학생이나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하면 선의의 피해 교사가 나타날 개연성도 있다는 점에서 구제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나.
▶선행학습이 가진 교육적, 사회적 병폐를 근절하기 위한 선행학습 금지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1등주의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또 지나치게 어려운 교육과정, 대학입시 경쟁, 학벌주의 등이 그대로인 이상 근본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유혹을 떨치긴 어렵다. 따라서 선행학습의 유발요소를 막기 위한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지나치게 어려운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대학입시 제도 및 사회구조의 개선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선행학습 규제가 입법 의도에 맞게 정착되려면 어떤 인식이나 제도 등이 필요한가.
▶우리나라에는 좋은 직업(직장)을 가지려면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그 때문에 학교 수업은 점수 따기 위한 것이 돼 버렸고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모든 교육이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대입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내신이 범교과적 고등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로 격상되고, 수능시험이 고교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기초학력을 평가하는 정도의 시험으로 전환될 때 실질적으로 공교육이 정상화할 것이다.
정리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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