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2 성적이 230명 중 200등, 그래도 글쓰기는 놓지 않았죠

이현석 씨
이현석 씨

이현석 씨는 여행을 할 때마다 기록을 남긴다. 이 책도 그가 수년간 여행을 하며 남긴 일기와 기록을 바탕으로 펴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수첩과 펜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몸에 밴 습관처럼 보였다. 글솜씨는 하루아침에 뚝딱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 학교 선생님에게 글을 보여주면 "애늙은이처럼 쓰지 말라"고 혼났지만, 고등학교에 와서는 평가가 달라졌다. 이 씨는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고1 때 국어 선생님이 내가 작문한 것을 보고 '천재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때도 여행기를 썼던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대중에게 노출되는 글쓰기는 고3 때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남들은 한창 수능 공부에 매진하는 시기에 '딴 짓'을 한 것이다. "당시 '웹진 영화'라는 매체가 새로 생겼고 여기에 영화 평론을 썼어요. 직장인이나 대학원생,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에서 제가 제일 어렸어요. 영화를 진짜 좋아했어요. 도피처였죠. 고2 때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남자 둘이서 질질 울면서 나왔어요. 공부도 안 하고, 사회에 '잉여'가 되겠구나 위기감을 느낄 때였어요."

이렇게 놀기 좋아하던 고등학생이 의대생이 된 사연도 꽤 극적이다. 이 씨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게을리했다. 고2 때 230명 중에 200등을 했는데 그중 40명은 씨름부였다. 사실상의 꼴찌"라고 숨김없이 말했다. 고3이 되어 같이 놀던 친구들마저 다 공부를 하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공부했고,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진학에 성공했다. 하지만 책 표지에 소개된 것처럼 '영화판과 시위 현장을 전전하다'가 대학을 그만두고 고향인 대구로 내려왔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비인간적인(?) 재수 생활을 거쳐 영남대 의대에 06학번으로 입학했다.

이 씨는 의대생이 돼서도 계속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했다. '의대생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의대 이야기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더 많이 썼다. 그는 2010년에 쓴 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해에 삼성반도체 노동자 박지연 씨가 백혈병으로 죽었어요. 당시 한창 '88만원 세대' 붐이 일었고, 대학생을 위주로 사회 담론이 만들어졌죠. 하지만 삼성반도체 사건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어요. 이때 수능 성적으로 최상위권에 있는 의대생들과 박지연 씨의 '갭'이 느껴져서 사설을 썼어요. 안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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