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빼면서 집중력도 빠져나갔다…『결핍의 경제학』

결핍의 경제학/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공저/이경식 옮김/RHK 펴냄.

'결핍이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

경제학자 센딜과 심리학자 엘다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한정된 자원, 즉 무엇인가 부족한 상태'를 새롭게 바라보며, 결핍이 우리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을 때, 어떤 종류의 결핍이든 간에, 인간은 그 결핍에 매몰된다는 것이다. 가령 배고픈 사람은 허기를 달래줄 음식을 가장 필요로 하고, 바쁜 사람은 프로젝트를 빨리 끝내기 위해 매달리고, 돈에 쪼들리는 사람은 이달치 방세를 마련하는 데 몰두하고, 외로운 사람은 동반자를 찾는 데 몰두한다.

책에 따르면 결핍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의력을 사로잡고, 어떤 것에 주의력이 사로잡힌 사람은 사고방식도 달라진다. 따라서 결핍 상황에 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상황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시간이 없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 배가 고픈 사람 등 무엇이든 결핍 상태에 있는 사람은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는 심리현상을 보여준다. 지은이들은 이런 현상을 '터널링'(tunneling)이라고 칭한다. 긴 터널 안에 들어가면 오로지 멀리서 빛을 발하는 출구만 보이고 주변의 모든 사물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것을 빗대어 만든 용어다.

'터널링'은 집중도를 높여 사람을 좀 더 생산적이 되도록 한다. 화재 경보가 울리면 소방관은 오직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그러나 '터널링'은 대가를 요구한다. 소방관은 최대한 신속하게 출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덜 똑똑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이 높고, 그에 따라 빈곤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가난한 사람들은 지능 때문이 아니라 가난이라는 환경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슷한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정신능력이 위축된다'고 말한다. 가난한 상황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신경 쓰느라 마땅히 집중해야 할 다른 문제에 대한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책은 인도의 사탕수수 농부들을 소개한다. 이곳 농부들은 1년에 한 번 수확시기에 돈을 받는데, 돈을 받기까지 빈곤한 상태로 지낸다. 이들을 대상으로 수확을 한 달 앞두었을 때와 수확해서 돈을 벌었을 때 IQ를 검사했더니 9∼10% 차이가 났다. 수확 이전의 몇 달 동안 돈에 쪼들리는 상태에서는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며, 따라서 IQ도 낮게 나왔던 것이다. 반대로 소득이 생기고 형편이 나아지니 인지능력이 향상되었고, IQ 역시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책에 따르면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에는 살뿐만 아니라 정신적 능력도 줄어든다. 다이어트 때는 살빼기에 몰두하게 되고,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 운동을 했으니까 좀 더 먹어도 좋다는 생각과 지금이야말로 먹지 않아야 살을 확실히 뺄 수 있다는 생각이 혼란스럽게 떠오르면서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결핍은 악순환을 야기한다. 가난한 사람은 제때 요금을 내지 못해 연체료를 물게 되므로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지고, 바쁘고 가난해서 정크푸드를 사먹는 사람은 비만해질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질병에 취약해져서 더 나쁜 상황으로 내몰린다.

책은 결핍의 악순환을 예방하기 위해 '느슨한 완충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적으로 빡빡한 일이 닥치기 전에 어느 때 해도 좋을 일을 미리 처리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조금씩 대비해두면 결핍에 빠질 가능성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실수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 번만 하이패스 단말기를 설치하면 고속도로를 통행할 때마다 현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한 번만 자동이체를 신청하면 매달 날아오는 청구서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과자에 손을 대는지 안대는 지 늘 경계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아예 과자를 사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런 것들이 '느슨한 완충장치'에 속한다. 이렇게 해서 시간과 소득이 늘어나면 인지능력이 향상되고 형편 역시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이다. 책은 '결핍을 줄이는 것'이 곧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475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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