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세월호의 악마

1912년 타이타닉 사고 때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선박 침몰 직전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생존자들을 구명보트로 인도한 뒤 다시 타이타닉으로 돌아갔다.

배의 상갑판(上甲板)까지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그는 선원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나는 자네들에게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 없다. 여러분의 임무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 이제 자네들의 살길을 찾도록.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는 타이타닉호와 최후를 함께했다.

타이타닉 사건 이후 선장이 자신의 배와 운명을 함께한다는 것은 하나의 전통이 됐다. 그로부터 102년의 시간이 흐른 뒤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스미스와는 전혀 다른 선장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은 해양 재난 사고나 배 안의 대피 통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가장 먼저 탈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세월호 선장에 대해 "세계의 자랑스러운 선박 운항 관리 전통을 더럽혔다"며 "이 같은 행위로 선장은 '세월호의 악마'(Evil of the Sewol)라는 별명을 가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의 온갖 자화상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의 직업윤리도 없이 자신만 살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인간의 모습을 보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다른 이들을 구한 아름다운 영혼도 있었다. 구조돼 살아남았지만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 선생님도 보았다.

대형재난사고 때마다 드러났던 뉴스들이 이번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해운회사의 부적절한 안전 관리, 우왕좌왕하는 정부 재난 대응 시스템, 국가적 재앙마저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 무분별한 SMS 문자 장난질에다 스미싱 범죄까지….

그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건국 이래 그렇게 많은 대형 재난 사고가 일어났고 그때마다 온갖 대책이 수립됐지만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결국 언젠가는 또다시 대형재난사고가 일어날 것이고, 지금 상황과 비슷한 일들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리라는 무서운 현실. 한국병은 불치병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요즘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다. 진도 앞바다 춥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유명을 달리한 아이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따뜻하고 행복하게 지내렴.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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