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에서 진도로 달려온 민간잠수사들이 연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사고 첫날부터 생업을 제쳐놓고 현장으로 와 차가운 바다에서 생존자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있다.
참사가 일어난 16일, 동료 19명과 함께 진도로 달려온 신준민 특수임무수행자회 포항지회장은 진도 앞바다의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고 했다.
"조류가 빠르고 수심이 깊은데다 시야까지 좋지 않았습니다. 바다 속은 밤같이 어두워 공포심까지 들게 만들었습니다."
22일 신 지회장은 선체 4층 쪽에 진입해서 수색했지만 선실 안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세월호가 차츰 가라앉으면서 기울어 버린 탓에 수색은 더욱 어려웠다.
신 회장은 "일명 '머구리 잠수'는 탐색선 없이 선체에 진입해도 자기 공기 호스를 잡고 나오면 된다. 하지만 공기통을 매고 들어가는 '스쿠버 잠수'는 탐색선 없이 선내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어려워 굉장히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서 탐색선(가이드라인)을 타고 바다로 내려간 뒤 선체로 진입하려면 탐색선에 다시 자신의 생명줄을 묶고 그 줄을 풀면서 작업하다 선체에서 나올 때 그 줄을 잡아당기는 식으로 수색을 벌였다.
삼척 국제스쿠버교육협회(ISEA)의 최진호 씨는 선체 유리창을 깨는 작업이 만만찮았다고 전했다. 최 씨는 "유리창을 깨면 굉장한 압력이 생긴다고 브리핑을 받고 선체 수색에 나섰다. 부유물이 몰려나오면서 잠수부를 밀어내기도 하고 반대로 수압 차이로 빨려 들어갈 때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3층 난간으로 내려가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불빛을 비춰도 겨우 20㎝ 앞만 분간하는 수준이었다. 바다 아래는 완전히 암흑이다. 같이 들어간 잠수사가 1m 옆에 있어도 전혀 수신호가 되지 않았다. 유속이 빨라 이를 이겨내려고 하다 보니 호흡도 빨라지고 그만큼 산소 소모량이 많아 물속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수원시 해병대전우회 소속인 김동주 백석문화대 교수는 세월호 식당 근처까지 내려가면 먼저 작업한 잠수부가 달아놓은 망치를 이용, 객실 입구 쪽까지 접근했다. 그는 "물살이 세지 않은 '조금'이지만 물속 상황은 좋지 않았다. 센 물살에 밀리기 일쑤여서 손끝으로 더듬어가며 수색을 벌였다. 그나마 선내는 조류가 약했지만 그전까지 접근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했다.
민간잠수사들은 물속 시신이 조금씩 부패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구조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민간잠수사는 "인양되는 시신은 평소의 1.5배까지 얼굴이 붓고 얼굴빛도 그을린 것처럼 검게 변해 있었다"며 "며칠 물속에 있다 보면 부패가 시작돼 가족이 알아볼 수 힘들어진다. 물살이 약할 때 구조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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