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다이어리 원고를 넘겨야 하는 시각이 훨씬 지났는데, 백지 위에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음식 이야기, 맛 이야기라면 열 페이지도 모자랄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적도 있었는데, 생각 주머니가 텅 비어 버렸다.
세월호에서 "엄마 어떡해~" 하며 폰으로 마지막 목소리를 들려준 그 아이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이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고 구해주지 못해서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1980년대 후반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이 아마 88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는 한강 이남에서 등록금이 제일 비싸다는 대학교를 다녔다. 학교 본관 뒤편에 까치집이라는 칼국수 식당이 있었는데, 한 그릇의 가격은 500원이었다.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도저히 혼자서 한 그릇을 다 비운 적이 없었다. 부족하지만 부족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풍요로운 인심이 그립다.
케이크 한 조각 9천500원, 식빵 반 통 6천원, 딸기주스 한 잔 1만7천원, 김밥 한 줄 4천원. 자연산 회 한 접시 21만원. 고급원두커피 한 잔 1만2천원. 동네 반찬가게에서 플라스틱 팩에 담긴 반찬 서너 개를 집어들면 2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외식비, 반찬재료 구입비 등의 식자재 구입 체감물가가 너무 비싸다. 물론 대구의 평균치 물가는 아니고, 좀 비싼 곳들의 가격이다.
식품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서 비싼 가격을 받아도 마진은 별로 없다고 식당 업주들은 짜맞추기라도 한 듯한 소리를 한다. 업종을 불문하고 월 매출에서 식자재 구입 비율을 대략 34% 전후로 예산을 설정해야 남는 장사가 된다. 50%를 훨씬 웃도는 곳도 많다.
이렇게 비싼 가격을 받으면서, 장사가 잘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손에 쥐는 건 몇 푼 안 된다고 한다. 비싼 임대료와 관리비, 임금 때문이다.
수성구의 전통시장에 있는 한 식육점에서 판매하는 가마솥에서 끓이는 소고깃국은 성인 5명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양이 5천원이다. 선짓국도 마찬가지로 5천원이다.
대구의 대표 국밥으로 지정된 따로국밥 앞에서 주름잡아 보아도 된다. 뼈를 고아낸 국물에 소고기, 곱창, 내장도 충분히 들어 있고, 채소도 실하게 들어 있다. 많은 양을 끓여 내는 덕에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깊고 감칠맛이 난다. 식육점 주인아저씨의 고향에서 가져온 채소를 사용하고 국에 들어가는 내용물은 모두 국산이라고 하였다. 그 식육점 앞에 놓인 가마솥 하나의 양은 족히 100인분이 될 듯하다. 그 큰 가마솥 네 개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국이 끓고 있다. 식육점 앞에는 돼지 한 마리가 통으로 걸려 있다. 부위별 작업을 해야 하는 등 식육점의 일도 만만치 않을 터인데, 그 많은 양의 국까지 끓여서 팔고 있다. 전날 주문하면 돼지수육도 삶아 준다.
식육점에는 항상 아저씨 혼자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최소한 식육점의 고기 작업에 두 명, 국 끓이는 데 두 명, 적어도 네 명의 인력이 배치되어야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둘러봐도 식육점 아저씨뿐이다. 고기도 팔고 국도 끓이고, 국도 퍼 담아 주고, 일당백이다. 이 주인장의 엄청난 노동의 대가 덕에 정말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국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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