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풀잎에 물기가 조르르 흐르고, 그 추운 겨울도 따뜻한 봄 여울목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벚꽃도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날, 가정이라는 테두리를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지난날 어머님께 많은 신세와 도움으로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 펜을 들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근심 걱정으로 검게 그을린 이마의 주름살을 보면서 자꾸 마음이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어머님 그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이렇게 어머님 덕분에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습니다. 어제인가 꽃봉오리를 틔우는가 싶더니 저도 벌써 인생의 반 고개를 넘었나 봅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까. 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서 손자 재롱에 즐거워하시면서 여생을 보내셔야 할 텐데, 아직 어머님 품을 벗어나지 못한 채, 혼자 사는 저의 모습에 안쓰러워하시는 것 같아서 항상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을 향한 울음보를 터트리면서 뭔가 꽉 쥐어보고 싶다는 충동에 두 주먹을 꼭 쥐고 당신과의 천륜으로 바깥세상에 뛰어나왔죠. 빈 백지상태에서 어머님께서 이런저런 살아가는 방법으로 그 공간을 메워주셨죠.
어머님!
이제는 마음이 비워지면서 뭔가 꽉꽉 채워진 기분이랍니다. 사랑하고 싶고 베풀고 싶고 이 모든 것이 어릴 때부터 가르쳐 주신 어머님의 깊은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보다는 나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나를 믿고 있는지, 나는 나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할 것임을 늘 곁에서 가르쳐 주셨죠.
어머님 저는 이제 깨달았습니다. 평범한 진리 속에서 너무 큰 지혜를 얻었습니다. 삶의 모든 해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 더 행복해지려고 해서는 결코 행복에 도달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고 내가 살고 있는 매순간에 감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삶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님의 가르침 속에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어머님 사랑이 뭔지 알았습니다. 사소한 작은 것에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하여 모든 만물을 사랑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결코 후회가 없도록 모든 것 부둥켜안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고 매순간 순간 진심 어린 눈빛으로 세상을 향해 빛을 열 것입니다.
기나긴 암흑의 터널, 수십 년 동안 투병생활로 침상에서의 오랜 지루함, 생사의 갈림길에서 정말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병상에 누워 있는 저의 초점 없는 눈빛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어머님 몰래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제 삶이 비참해서 미래라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검은 잿빛이 저의 시야를 가렸습니다. 그때 저는 이빨을 깨물었습니다. 모든 절망도 저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와의 끝없는 투쟁을 했습니다.
저의 나약한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시지 않으면서 꾹 참고 계셨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만 가질 수 있는 모성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기서 너무 큰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혼자 중얼거렸죠. "이제 그 지겹도록 누운 병석에서 일어나자" 라고 저와 굳은 약속을 했습니다. 아픔을 딛고 일어나기까지 정말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묵묵히 지켜주신 어머니의 밝은 사랑의 눈빛이 아니었으면 아마 힘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 늦게 사랑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어머님의 자비로운 눈빛으로 알았습니다.
사랑은 무한한 것을 주고, 감싸주고, 안아주는 보자기 같은 마음으로 모가 난 것도 그 나름대로 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큰 절망 속에서 값진 보석을 캐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제는 더 힘든 일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꿋꿋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인내력을 배웠습니다.
그동안 사랑으로 저축해둔 적금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공짜가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아픔 속에서 많은 젊은 청춘을 헛되이 보냈다고, 시간에 대한 집착이 누구보다도 강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었다고 후회도 많이 했지만, 아픔 속에서 진주를 얻었다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을 통해서 사랑이 어떤 것인지 가슴 속 깊이 알게 되었고 강인한 정신력을 터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돈으로 살 수 없는 저에게는 인생의 큰 주춧돌이 된 기분입니다. 튼튼한 건물을 지으려면 무엇보다도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하는 것과 같이, 제 인생의 기초공사, 튼튼한 경험이 있으니까 앞으로 미래는 아름다운 꿈의 빛이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지금까지 이렇게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곁에서 위로를 주셔서 덕분에 이렇게 요즈음 너무 행복합니다.
세상살이는 이런저런 갖가지의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봅니다. 즐거운 일, 때로는 기억의 저장고에 담고 싶지 않은 아픈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봅니다. 이제는 기쁜 일 슬픈 일 그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넓은 마음이 생겨서 너무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저에게 어릴 때부터 늘 당부하셨던 말씀이 있죠. 자라서 무엇을 한다기보다 늘 누구 아내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꼭 결혼을 해서 저도 아이를 낳아서 엄마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느껴 보고 싶습니다.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제가 어머니가 되어보면 어머님 마음을 자라는 자식을 보면서 절절히 당신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노처녀라는 말이 듣기 싫어 동네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서 놀러도 잘 가시지 않고, 늘 소파에 앉아서 TV와 친구가 된 모습이 그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친지들에게 제가 아프다는 말씀 한마디 하시지 않고, 혹시 결혼하는데 장애가 될까 봐 어머님의 깊고 굳은 마음 존경합니다.
어머님!
이제는 건강한 모습으로 이렇게 일어났으니까, 늦게라도 교육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머님께서 저에게 빈 그릇에 사랑 담는 모습을 가르쳐 주었듯이, 저도 제자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받기에만 열중한 삶, 이제는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가르치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무리 값진 지혜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듯이, 어머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와 사랑으로 무엇보다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사랑의 전도사가 되어 지난날 어머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의 응답으로 열심히 실천하는 딸이 되겠습니다.
어머님 이제는 걱정 내려놓으십시오. 건강하고 튼튼한 딸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면서 어머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노래 잊지 않겠습니다.
어머님 너무 사랑합니다.
어머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머님 너무 미안합니다.
함께 오래했던 시간들 너무 행복했습니다. 오래오래 이런 마음으로 함께 살고 싶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2014년 3월 따뜻한 봄날, 둘째 딸 명희 드림
장명희(대구 달서구 성서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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