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통의 맥 잇는 사람들] 상주 왕실도예의 맥을 찾는다

'불의 예술' 조선 도자기 美 찾는 불씨 되고파

도예가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흙을 반죽하고 성형하여 조각한 뒤, 다시 건조하고 소성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과정이다. 작품을 1천300℃ 장작 가마에 넣어 사흘 밤낮을 불을 때며 겪는 창작의 고통은 다반사다. 특히 늦깎이 도예가에겐 더하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도자기를 굽는 상주 남장요 청호 남정순(60) 도예가. 전통 망뎅이 가마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그를 만났다.

◆ 상주 '남장요'를 아십니까

'평범은 싫다. 더 창의적이고 독특한 가치를 찾는다. 항상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오히려 사치다. 고통과 좌절만이 창작의 첩경이다.' 도예가들의 사고를 잘 표현한 말이다.

전통장작 가마 남장요는 상주시 남장동 산 88-2번지에 있다. 남장사 입구 국도 바위에 새긴 '전통장작 가마 남장요'란 글씨가 눈에 띈다. 국도에서 산길을 따라 들어가면 남장요가 나온다. 주변 풍광이 시원스럽다. 때마침 기자가 방문한 날, 남 도예가는 전통 망뎅이 가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도자기를 꺼내고 있다.

가마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가마 안을 들여다보니 아기자기한 찻잔과 큼지막한 작품까지 다양한 모습의 도자기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가마 밖에는 오전에 꺼낸 작품들이 선반 위에서 열기를 식히고 있다.

"이번에는 한 작품도 실패 없이 깔끔하게 완성돼 기분이 좋아요." 한 점 한 점 자신의 작품을 살펴보는 남 도예가의 눈빛이 빛난다. 작은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은 가마의 뜨거운 열기보다도 더 뜨겁게 느껴졌다. 그는 "비록 늦게 출발했지만, 항상 처음처럼 배우는 자세로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며 "차인들이 오래도록 애정을 가질 수 있는 혼이 담긴 찻그릇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늦깎이 도예가의 길

공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백 개의 차 도구가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모두 한국전통 망뎅이 장작 가마에서 나온 작품이다. 남장요의 특징은 '망뎅이 가마'라는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장작 가마로 구우면 불의 세기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가 나온다. 도자기 공예를 '불의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힌다.

그는 도자기를 시작하게 된 운명적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원래는 야생화 모임 활동을 했어요. 20여 년간 상주시 '들꽃사랑 야생화' 모임 회장을 맡았어요. 야생화를 하다 보니 야생화를 담는 화분이 너무 비싸 제 손으로 화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문경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 도자기반'에 등록했다. 3개월 동안 도자기 강좌를 들었다. "그게 도자기를 하게 된 시작점이었어요." 남 도예가는 당시 지도교수로부터 "소질이 있다. 대학 도자기공예과에 입학해서 제대로 배우면 성공하겠다"는 권유에 솔깃해졌다.

이듬해 문경대학 도자기공예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도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만학도였지만 2007년 문경대학교 도자기공예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한민국 신지식인이며 최근 (사)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에 의해 '2014 대한민국 도자기 명인'으로 선정된 문경 관음요 김선식 명인으로부터 전통도자기 기법을 배웠다.

◆상주 왕실 도자기의 맥을 찾는다

졸업 후 곧바로 상주 남장동 자신의 산에 '한국전통 망뎅이 장작 가마' 작업장을 지었다. 2년이 넘게 걸렸다. 남 도예가의 작품은 다완, 찻그릇 등 차 도구들이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작품이 섬세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해 5월 '제10회 전국 찻사발 공모대전'에서 입선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문경대학 재학 시절에도 전국 공모전에 출품해 다수 입상 경력을 가진 그는 비록 늦깎이지만 실력만큼은 인정받는 도예가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넉넉하고 포근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실력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남장요를 찾는 발걸음도 늘어나고 있다. 이달 12일에는 전북 익산의 원광디지털대학교 학생 60여 명이 방문했다. 그의 실력과 6만여㎡에 달하는 남장요의 아름다움이 전라도까지 알려진 것이다. 공방 한쪽에는 체험하러 왔던 사람들의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울퉁불퉁하지만 제각기 매력을 뽐내는 도자기로부터 체험객들의 열정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남 도예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장작 가마에 사흘 동안 불을 때면 그 장작이 타서 재가 된다. 재가 도자기에 내려앉아 달라붙으며 자연스레 유리질이 형성된다. 그 달라붙는 위치와 양이 매번 달라서 수많은 색상의 도자기를 나타나게 한다. 이것은 장작 가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라고 설명한다.

남 도예가의 꿈은 상주의 왕실 도자기의 맥을 되살리는 것이다. "상주지역은 조선 초기에 왕실에서 사용되는 자기의 절반을 생산했지만, 지금은 그 맥이 끊긴 상태"라며 "작은 노력이지만 전통을 유지하는 도예촌을 만들어 후배를 양성하면서 상주 왕실 도자기의 맥을 찾는 데 작은 불씨가 되는 게 소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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